[발언대] 열정! 열정! 열정!!

2025-01-24     이충미 건축사·진짜노리 건축사사무소 (광주광역시건축사회)
이충미 건축사(사진=이충미 건축사)

10년의 직장생활 후 무작정 퇴사를 했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선배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운명처럼 낡은 정미소를 만나게 되면서 삶이 달라졌다. 116제곱미터(35평) 정도의 작은 규모인 정미소였다. 한쪽은 무너져 내려 갈라진 벽체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양철지붕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으며, 산화된 빨간 지붕도 낡고 비루했는데, 왜 그렇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를 일이다.

직장생활 마지막 프로젝트가 창조경제단지 내, 여직원 기숙사와 본관동 리모델링이었다. 재생에 자신이 있었고,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그 매력적인 정미소에 이끌려, 지자체장에게 덥석 계획안을 제안했고,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생애 첫 수주를 하게 됐다. 지금 떠올려도 흥분되는 순간이다.

선배의 사무실에서 후배와 함께 프리랜서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과업내용과 업무대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제작도면, 로고디자인, 간판디자인. 빈티지 조명을 고르기 위해,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발품을 팔았다. 돌이켜보면 꼼지락꼼지락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예쁜 창문의 비율을 찾기 위해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차이를 고민하는 그 순간들이 참 좋았다.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건축사사무소 개소를 결심했다. 진정성 있게 즐기면서 설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빠르게 인정받았다. 고객들이 계속 찾아주셨다. 수의계약 건이 증가했고, 프로젝트의 개수도 쌓여갔다. 직원을 충원하게 됐고, 그렇게 고정비가 생겼다. 하지만 건축사는 경영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나의 프로젝트만 붙잡고 영혼을 갈아 넣을 수 없다.

업무대가 대비 과업 내용을 따져야 하고, 투입할 시간과 소득이 있는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수의계약이라는 호의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일이 끊기지 않으려면 계속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 경험적 해답이기 때문이다. 2019년 9월에 시작해 2022년 4월에 완료한 프로젝트가 있다. 프로그램도 바뀌고, 위치도 바뀌고, 인허가 문제가 쉽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BF이슈까지 생겼다.

설계변경도 수차례 이뤄졌지만, 설계비 증액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사비 증액에 대해 받아들이는 온도와 설계비 증액에 대한 발주처의 온도 차이는 크다. 다시 말해 건축사사무소의 업무량과 인건비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기간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 설계안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지만 말이다. 서비스 정신을 장착하고, 영혼을 담아 열심히 하게 되면 일은 많이 하지만, 경영상황 개선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래된 단어인 것 같지만 ‘열정페이’와 ‘재능기부’를 아직도 원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건축경기가 얼어붙어 일이 너무나도 귀한 이 시기에, 그나마 열정이 넘쳐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흑자를 기록하는 건축사사무소가 되는 언젠가를 꿈꾸며, 올해도 난 직원들에게 외친다. 

“ 열정! 열정! 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