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경쟁력

2010-02-01     박경립 강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아이티의 지진은 우리로 하여금 지진에 대한 대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지진의 안전지대라 여기며 도시를 만들어온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전 건축물의 내진구조설계를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지진 가능지역을 정밀 조사해 지역별로 대비하는 것이 옳으냐를 갖고 논의를 거듭하던 적이 있었다. 어느 것이던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선뜻 결정을 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도시의 경쟁력은 여러 지표로 따져질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를 휩쓸고 간 신종플루를 비롯하여 광우병, 조류독감 등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병들은 물론, 미국 금융회사의 도산과 함께 시작한 금융위기는 쓰나미가 되어 세계경제를 위축시키고 얼어붙게 하였다. 당연히 건축경기는 바닥에 가라앉고 아직도 일어 설 줄을 모르고 있다. 이익의 추구가 너무 지나쳐 벼랑 끝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갔다가 절벽에서 추락한 사건으로 자유와 방만 사이의 선을 어떻게 그어야 공생 공영 할 수 있는가를 세계에 절실히 알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잘 나가던 금융가가 얼어붙으니 도시의 경제가 얼어붙고 한파는 올해 닥친 몇 십 년만의 폭설과 한파에 비견할 만하였다.

동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는 방법 중 흥미로운 것은 하나는 따뜻한 곳을 향해 이동하여 추운 겨울을 넘기고 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겨울잠을 자는 것이라 한다.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디지털 노마드의 세상이 되었어도 국경을 넘어 일을 찾아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장벽, 관세의 장벽, 법의 장벽 등 많은 장벽들이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고 교류하려 하여도 현실적 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나라 안에서 도시에서 재생의 원동력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벌써 많은 국가가 도시의 경쟁력을 제고 하여 국가 경쟁력으로 삼으려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도시들이 그 나름대로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하며 시도하고 있다. 도시들마다 각종 사회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문화관련 시설을 설치하고 축제를 열고 각종 이벤트를 여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는 도시는 많지 않다. 계획들 대부분이 선진 각국의 예들이 벤치마킹되고 그와 유사한 각종 개발 계획들이 세워진 것이나 내재적 발전을 할 수 있는 인구의 질적 구성과 역사 문화적 역량의 차이, 지리적 요건 등 수없이 많은 다른 요소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창의성과 다양성의 시대에 유사한 복제의 반복으로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도시에 적용할 만한 전지전능한 개발 이론과 계획은 없다. 컴팩트 시티, 슬로우 시티, 에코시티, 창의도시 등 새로운 이론과 개념이 등장하여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 뜨게 하지만 좋은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시와 잘 맞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창의도시(the creative city)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하여 창의적인 활동이 전제가 된 도시가 창의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도시를 일구는 데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구성원은 누구이고 힘을 합할 구성원의 잠재력은 어떻게 되며 그들의 힘을 합쳐 낼 시너지의 가능성은 어떤가에 대한 정밀 진단이 모든 발전 계획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일은 모든 시민이 다함께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출발에 앞장 서야한다. 도시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하는 건축인들이 개개의 건물만 짓지 말고 이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함께 하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