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효 건축사의 ‘다시 책으로’ ⑥ 디자인의 원동력은 평범한 생활용품에 대한 예리한 눈과 애착

2025-01-10     이상효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트임
눈의 모험 표지(자료=정보공학연구소)

눈의 모험 / 마츠다 유키마사 저 / 김경균 역 / 정보공학연구소

천재에게는 두 가지 필수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연상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수리능력이다. 전자는 아이디어에 대한 집중력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반(?) 이상 천재가 확실하다. 

저자, 마츠다 유키마사는 일본 출판분야에 종사하는 시각예술감독으로, 책「눈의 모험」은 일본의 대표적인 디자인 잡지「디자인의 현장」에 저자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했던 글을 출판한 책이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시각디자인의 발상과 창조력은 ‘닮은 꼴’이라고 한다.

닮은 꼴로 얻는 연속되는 연상은 곧 시각적인 ‘유추법’이다. 고민하던 디자인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영감을 얻은 경험은, 건축사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구전동요처럼 ‘원숭이 빨간 엉덩이’가 ‘높은 백두산’이 되는(?) 것과 같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맥에서 새로운 디자인 단서를 찾는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는 최종의 결과물보다 영감을 준 ‘원숭이 엉덩이’가 더 중요하다.

읽을수록 저자의 연상력도 놀랍지만, 끊임없이 연상력을 유지하는 저자의 다양한 분야 특히 건축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된다. 다소 과장된 정보도 있지만, 저자는 학자가 아니기에 디자인을 위한 오독(誤讀)은 오히려 뛰어난 상상력의 ‘도약’처럼 보인다.

이때 건축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자가 직접 대상을 분석해서 구성한 독보적이고 시각적인 결과물(diagram)들이다. 저자의 ‘닮은 꼴’의 경로를 추적,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뒤샹의 이미지 분포도(104p)」와 영화, 「로프」 등장인물들의 동선(경로)을 분석한 다이어그램(266p) 등 책 중간마다 저자가 작성한 창의적인 다이어그램들은 건축사들이 구상하는 다이어그램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인상적인 것은 디자이너로서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다. 일본에서만 제작/생산되는 작은 생활용품인 이불떨이개(136p)에 대한 설명과 형태를 파악하고 관련 디자인 원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출신 디자이너(건축사)들이 갖는 공통된 태도와 마인드로 읽힌다. 저자의 연상력 기반은 예술작품을 수용하는 지식과 일상용품에 대한 예리한 ‘눈’이다. 발명가에게는 불평과 불만이 발명의 원동력이 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관심과 애착이 디자인의 원동력이 된다. 

개업한 건축사라면, 첫 사무소의 이름과 로고(C.I)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건축사는 종합디자이너라는 생각에 자칫 시작했다가 형상과 글꼴, 색상까지 고민하게 되는 2차원 미로(!)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을 독파하게 되면, 나의 사무소 로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언급하는 일화에 대한 정확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이 없어서 저자의 뛰어난 연상력을 역추적하기 힘들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