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축이 간다] 아픈 역사 간직한 카레이스키 위한 공간 설계…에이치플러스 건축사사무소의 ‘한국문화예술의집’
K-건축이 간다- 우즈베키스탄 ‘한국문화예술의집’ 전통건축 요소 반영해 현지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준공식 참석해 극찬 해외 프로젝트, 현지화 없인 성공 보장 어려워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약 18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전할 수 있는 건축물이 들어섰다. 이 건축물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종묘의 정전에서 볼 수 있는 길의 연속에 의한 회유공간을 구성하고 있으며, 한국적 조형 요소를 적용한 누, 담, 정자가 배치됐다.
연면적 7,650제곱미터, 공연장과 연회장, 사무실, 전시장 등을 갖춘 복합 문화시설인 우즈베키스탄 ‘한국문화예술의집’은 2016년 ‘(주)에이치플러스 건축사사무소(한만경 대표 건축사, 서울특별시건축사회)’의 설계에서 비롯됐다. 에이치플러스 건축사사무소는 한국문화예술의집이 고려인들의 정신적·문화적 구심점이자 우즈베키스탄 내 한국문화 홍보 행사나 한·우즈베키스탄 문화교류 행사 등을 유치해 양국 문화교류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건축물로 계획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2006년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법인을 운영한 경험이 십분 발휘됐다. 한국의 전통적인 공간요소가 건축물 구성 요소별로 스며들었으며, 현지인들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한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적 색깔도 녹여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한국 내는 물론, 우즈베키스탄의 관심과 지원도 뜨거웠다. 당시 우즈베스키스탄은 건물이 들어설 부지를 제공하고,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준공식에 이어 개관식에도 참석해 “한국문화예술의집은 한·우즈베키스탄 문화가 조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우정이 더욱 두터워지는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한국문화예술의집’은 준공 후 많은 현지인들에게서 랜드마크로 손꼽힘과 동시에 동포(고려인)들로부터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인 타슈켄트 도심지와 8킬로미터, 공항에서 약 10킬로미터 이내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점도 한몫한다. 인근 지역이 저층 주거지이고, 인접해 있는 목화밭 등 농경지가 위치한 점도 한국문화예술의집이 조명받은 요인이 됐다.
에이치플러스 건축사사무소 한만경 대표 건축사는 “전통적인 배치와 공간적인 요소인 중정, 부재에서부터 실내외 공간의 위계 따른 특징 반영 등에 이르기까지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애썼다”며 “개관식에 우리나라 대통령과 현지 대통령이 함께 참석하는 등 관심과 격려를 받은 한국문화예술의집이 앞으로도 우즈베키스탄과 우리나라의 문화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에이치플러스 건축사사무소 한만경 대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우즈베키스탄 ‘한국문화예술의집’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수주 단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1923년, 러시아에서 강제로 이주된 우리 동포들이 이역만리 낯선 땅인 우즈베키스탄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 동포들은 우즈베키스탄을 최고의 곡창지대로 일궈냈습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려인(카레이스키)입니다. 고려인들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었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2015년,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의 우정을 기리는 ‘한국문화예술의집’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수주 단계에서 에이치플러스는 CIS(구소련 국가) 지역과 우즈베키스탄에 현지 법인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건축사사무소였습니다. 다른 참가 업체들과 달리 현지에서 쌓아온 풍부한 실적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한 계획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에이치플러스는 이듬해 설계를 완료했고, 2018년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Q. 개관식에는 양국 대통령이 참석할 만큼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설계 과정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요소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통적인 배치와 공간적 요소인 중정, 누하 진입, 열주, 공간의 위계를 통해 실내의 특징을 구현하고자 계획했습니다.
또한 전통 건축 자재와 지붕 형태를 건축물의 외관에 적용했습니다. 수년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건축 설계 및 감리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기후와 환경에 적합한 설계와 건설 공법을 도입해 설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공사 감리 과정에서는 현지 법규와 인허가 규정을 준수하면서 차질 없이 공사가 진행되도록 기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시공사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Q.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시민들을 만났을 때 현지 반응은 어땠는지, 또 개인적인 감회도 궁금합니다.
한국문화예술의집이 준공된 후 많은 현지인과 고려인 동포, 교포 여러분들이 한국의 기술력과 전통적 디자인을 재해석해 설계된 건축물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한국적인 전통 공간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감사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습니다.
2006년 이후 18년 동안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이르기까지 해외 법인을 운영해 왔습니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는 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 동포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 곳입니다. 이러한 지역에 문화와 예술을 위한 공간, 그리고 외교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함께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도 CIS 지역에서 건축 설계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Q.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주의할 점과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주의할 점과 노하우는 철저한 현지화로 귀결됩니다. 해당 국가의 법규와 기준, 인허가 규정을 충분히 파악한 후, 국내의 설계 기법과 공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현지 기후와 환경에 맞는 설계도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능력 있는 현지 엔지니어를 고용하면 효과적입니다.
또한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해당 국가의 언어 학습도 필요합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전문 통역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통역사의 존재는 업무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해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설계 과정과 설계 내용을 현지화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Q. 향후 주목하고 있는 프로젝트 계획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다년간의 해외 경험과 지역 특화 전략을 바탕으로 러시아 등 CIS 지역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카자흐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청사 및 관저 ▲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영사관 및 관저 리모델링 ▲우크라이나 대사관 관저 신축 ▲러시아 모스크바 대한민국 대사관 관저 리모델링 설계 등을 수행했습니다.
최근에는 보다 현지화된 전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진출 국가의 현지 발주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식입니다. 그동안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해왔기 때문에 성장의 폭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의 디자인과 기술력을 현지에 접목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현재 국내 건축 및 건설 시장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많은 젊은 건축사들이 자신의 기량과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길 추천하며, 그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