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건축과 풍수지리(風水地理)

2024-12-26     윤석준 건축사 · 공 건축사사무소 (세종특별자치시건축사회)
윤석준 건축사(사진=윤석준 건축사)

“묘(墓)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惡地)에 자리한 기이한 묘”, 이 말은 사자(死者)의 집인 유택(幽宅)을 중시하는 풍수 사상을 배경으로 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파묘(破墓)’에서 풍수사(風水師) ‘상덕’역을 맡은 최민식의 대사이다.

‘파묘’는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다시 한 번 소환하면서 영화의 장르로 재탄생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수지리는 산과 물의 지형 형세를 관찰하여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일을 의미한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는 실제로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형태에 속한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보면 앞의 강에서 물을 쉽게 길어올 수 있고, 뒷산에서는 땔감과 건축재료를 구할 수 있어서 사람의 생존에 적합하였을 것이다.

남향집 또한 명당의 범주에서 제외될 수 없을 정도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호하는 주거 형식이다. 예전에는 남녘에서 햇볕이 잘 드는데다 겨울의 북풍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고, 요즘은 생활 공간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삶을 따뜻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주고 자연 난방으로 경제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남향 위주의 건물이 더 높은 부동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에 있어 풍수지리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고 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며 획일화된 오늘날 배산임수의 형태로 자리 잡은 아파트 보다,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역세권, 숲세권, 학세권, 슬세권 등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주거지, 자연환경과 가까운 주거지, 교육환경이 갖추어진 지역, 편의시설이 밀집한 주거지야말로 옛날의 배산임수보다 주거 환경의 편리성과 쾌적성, 실용성이 강조된 현대적 개념의 풍수지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건축물 내부 공간의 배치도 기능성과 동시에 주요 공간의 위치, 문과 창문의 배치, 가구 배치 등을 통해 기운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풍수지리를 염두에 둔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적이고 기능적으로 만족스러운 실내 디자인은 색, 모양, 재료와 같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균형과 조화를 꾀하고, 편안함과 사용성을 향상시키며 나아가 인간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한 관점에서 본다면 풍수지리의 현대적 적용이라고 단정지어도 과언은 아니다. 

건축은 단순히 벽과 지붕을 세우는 행위를 넘어, 인간의 생활 환경을 조화롭고 편하게 만들고자 하는 예술이다.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뿐 아니라, 건강과 행운, 긍정적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최적의 주거 환경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면에는 풍수지리의 개념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시나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