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건축사
필자의 어린 시절, 시계가 있는 집은 동네마다 손꼽을 정도여서, 시간을 물으러 오는 이웃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친구집에 있는 뻐꾸기시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매 시간마다 어김없이 문을 열고 나와 그 시간의 숫자만큼 뻐꾹 소리를 내곤 도로 제집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우리도 뻐꾸기시계로 바꾸자며 할머니를 졸라대었다.
뻐꾸기하면, 요즈음 세대는 요나손의 뻐꾹왈츠를 떠올릴 테지만 필자의 세대에는 축음기가 귀하기에 학교에서 배운 윤석중 선생의 뻐꾸기 동요를 생각하게 된다.
“뻐꾹 뻐꾹 봄이 가네 / 뻐꾸기 소리 잘 가란 인사 /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꾹 뻐꾹 여름오네 / 뻐꾸기 소리 첫 여름 인사 / 잎이 새로 돋아나네”
노랫말처럼 뻐꾸기는 여름철새이다.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는 속담이 나올 만큼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꾀꼬리와 함께 한국 농촌을 노래한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꾀꼬리의 낭랑한 목소리와 단순하면서 약간 쉰 듯한 뻐꾸기의 노랫소리는 어울릴 수 없는 불협화음 속에서도 묘하게도 어울리는 미국의 웨스턴 음악 같다.
그러나 뻐꾸기의 산란과 새끼키우기는 낭만과 거리가 멀다. 개개비, 노랑때까치, 붉은 뺨멧새 등 주로 자신보다 작은 새들의 알 낳은 둥지에서 그 중 하나를 떨어뜨리고 그 한 가운데에 자신의 알을 하나씩 낳아 놓는다. 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데, 하루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떨어뜨리고 갓 태어난 새끼도 밖으로 밀쳐버려 둥지를 독점하고는 부화시킨 어미의 먹이를 독식한다. 제 새끼인줄 알고 열심히 먹이를 날라주는 부화어미와 달리, 뻐꾸기는 매일 일정한 시각에 정확히 찾아와 울음소리로 새끼를 세뇌시킨다고 한다. 그 후에도 일주일가량 부화어미의 먹이를 받아먹은 후, 새끼는 어미를 따라 미련 없이 태어난 곳을 떠나 버리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의 권익신장과 국리민복을 위하여 법 제도의 개선 정비를 위한 건의, 회원 및 대민 교육활동은 물론 건축문화대상의 운영, 등 많은 사업을 회원의 회비와 노력 봉사로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협회가 이룩한 일반혜택을 향유하고 그도 모자라 뻐꾸기처럼 남의 자리를 쳐내고 매년 수상하는 뻐꾸기 건축사들이 있다. 작품을 남에게 보이기 전에 우선 인간이 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