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슬기로운 건축인 생활
며칠 후 모교에서 졸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간담회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다. 교수님이 당부하시길 ‘올해 취업 상황이 좋지 않고 모두 의기소침해 있으니 힘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부탁한다’라고 하였다.
오랜만에 내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를 회상해 보았다. 2009년 무렵, 경기는 호황이었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도는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 졸업동기 대부분은 희망하는 것과 비슷한 위치의 일자리들을 얻을 수 있었고 큰 부침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후로 몇 해 동안 후배들은 급냉각된 건축시장과 경제위기로 인해 건축을 떠나거나 풍파를 겪으며 실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줄 것 같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 문제는 시간이 흘러야 해결될 수 있다. 지금보다도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결국 다시 회복되는 시점은 온다. 그때까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자라고. 사실 위기에 당면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중소규모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와 처방도 비슷하다. 약을 먹으면 2주, 먹지 않으면 14일의 시간을 보내야 호전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이다.
올해보다 더 시간이 많아질 내년을 어떻게 슬기롭게 보낼까. 크게는 두 가지의 관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는 나를 잘 돌보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개업 후 열 번째 되는 해, 체중은 70kg에서 90kg으로 늘어났다. 책장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였고 유튜브 구독목록은 해마다 두배로 길어졌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술을 끊고 식습관을 고쳐보고 있다. 여러 가지 문헌을 참고해 나름의 식사규칙을 정해서 변화를 준 지 약 5개월, 9kg 정도 감량을 하였다. 내년에는 다시 정상체중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는 유튜브앱을 삭제하였다. 영상으로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는 책상 앞에 앉아 직접 찾아서 시청한다. 다시 책을 손에 쥔 시간을 늘리려 노력해 보고 있다. 때론 편리함이 습관이 되고 나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무소의 체제를 정비하는 일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위기가 곧 기회이다. 지역 대학에서 졸업한 예비 건축인들의 취업고려대상 1순위는 언제나 서울이다. 나조차 그러했고 그 균형이 무너진 것은 한참 전이니 어쩔 도리는 없다.
매년 울산에 남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모처럼 다양한 친구들이 지역 생태계에 진입할 기회이니 결이 맞는 친구들을 사무소에 채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반업무나 회계, 인사 관련 시스템들을 개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겨울이 오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봄이 있음을 안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