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설계공모를 제출한 여러분의 노력은 안녕하십니까?

2024-12-10     이정욱 건축사‧지점토 건축사사무소
이정욱 건축사‧지점토 건축사사무소 (사진=지점토 건축사사무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설계공모. 우리는 공정이라는 단어 아래 심사위원 실명제, 심사 라이브 중계, 심사위원 사전접촉 금지서약서 등 여러 가지 제도와 장치로 설계공모를 투명하게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심사위원의 자질과 책임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고 있지 않다. 최근 들어 여러 건축사들의 SNS를 통해 설계공모의 뒷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심사위원에게 청탁했던 에피소드, 심사위원으로서 청탁을 받았으나 거절했던 에피소드 등이다. 한두 다리만 건너도 이러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부터 부정행위가 비일비재 하다는 방증이다

최근 심사 라이브를 통해 심사위원들을 살펴봤다. 몇 가지 불유쾌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심사평을 하거나 심사평 자체를 음소거로 처리한 심사과정이 난무했다. 누군지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설치된 카메라에 비친 심사위원들은 후폭풍이 무서운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설계공모의 기본검토를 하지 않고 심사를 진행하는 심사위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심사위원들이 현장답사를 안 가본 것, 설계지침을 검토하지 않은 것 등 기본자격을 갖추지 않았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코멘트를 듣기도 한다.  

셋째, 제출도서의 제시 기준이 지켜지지 않음에도 순위권은 물론 당선된 경우도 있다. ‘렌더링 불가처럼 제출물의 표현기법 등이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마음에 드는 계획안이라면 감점보다 가점이 더 많이 적용되기도 한다. 결국 실격만 아니라면 감점을 감수하고 지침을 위반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해 질 수밖에 없다.  

넷째, 계획으로써 중차대한 지침 위반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마음에 드는 계획안이라면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4년 진행한 모 설계공모 건에서 주차 계획 시 보차분리 반영 및 대형주차 계획 반영이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형주차계획이 빠진 설계안이 순위권이었으며, 보차혼용이 되어 있는 설계안이 당선됐다. 현재는 이 공모 건에 대한 심사 라이브 영상, 설계 당선안에 대한 자료는 전부 비공개 상태로 바뀌었다. 무슨 이유로 비공개로 변경됐는지 지자체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도 이유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만큼 떳떳하지 못한 심사과정이 있었다는 추론해 볼 수 있다.  

간혹 몇몇 심사위원들은 세, 네 번째 경우에 대해 제출한 성의와 노력이 있는데, 매정하게 실격시키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에 필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동등한 조건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한 끝에 겨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공정한 건축사들의 노력은 어떻게 보상 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필자는 설계공모의 매력이 100이라는 완성품에서 설계조건 및 지침이라는 제한의 수를 뺀 후 최선의 조건과 본인의 건축관을 담아 표현해 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제한의 수가 동등하지 못하다면, 설계공모 본연의 역할은 무색해지고, 점점 쇄락의 길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악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심사 투표제 금지와 지침위반작 우선 소거법의 도입이다. 최근 우리나라 건축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설계공모에 뛰어드는 건축사들이 많아지고, 제출 작품 수도 늘어났다. 그래서 주로 하는 심사방법이 상위 몇 개작을 추리고, 그 후에 순위작 심사를 진행한다. 짧게는 10초 만에 공모참가자의 두 달간의 노력이 평가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 지침위반을 한 작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논의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는 반발심만 더 크게 가질 뿐이다. 작품수가 많다면 지침위반을 한 작품을 먼저 소거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추리는 선제 행위가 있어야 그나마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 관내 심사위원 지정금지다. 많은 지자체에서 관내 교수 및 건축사 등을 심사위원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자문을 구하기도 쉽고, 건축심위 등 여러 가지 행정진행과정에서 원활한 업무처리가 용이하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역 색이 강해지고, 부정행위 발생할 확률이 크다는 단점도 분명하다

셋째, 심사위원 본인의 심사기준의 발표다. 최근 진행하는 설계공모는 라이브로 심사 진행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본 심사에 앞서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심사기준을 각자 발표하고, 이 내용을 토대로 심사를 함으로써 기준과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설계채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정 기준의 표현정도를 정해 설계 초안을 사전에 준비함으로써, 각 심사위원간의 평가기준을 명확하게 가져가는 방법이다

넷째, 설계공모 참가자가 심사위원에 관한 후기를 남기는 제도의 도입이다. 설계공모 심사가 끝난 후 적어도 세 번째 심사 제안(심사기준 발표)이 진행된다면, 설계공모 참가자는 심사과정을 지켜본 후 심사위원에 대해 후기를 적어 제출하는 방안이다. 본디 부정행위를 하던 사람은 계속 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심사과정의 모순점을 설계공모 참가자가 문제제기를 하고 이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쌓이게 되면, 점진적으로 걸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에게 부과되는 노력이 과연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넘게 고민과 고뇌 속에서 노력해 온 참가자들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울 뿐이다. 그 노력을 존중해 심사위원도 노력했으면 한다. 자신만의 이익이 아닌 우리나라 건축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기꺼이 반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까지 호소하게 된 이유는 일부 특정의 공모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목도 했을 때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대다수의 건축사들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행위와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세대가 건축계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대하는 발주처, 시공사, 공무원에게만 공정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축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건축사 개개인은 물론 협회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건축계 스스로 자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건축계가 한 단계 발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