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효 건축사의 ‘다시 책으로’⑤ 열린 도시를 위한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강령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Building and Dwelling, ethics for the city)/ 러처드 세넷 저/ 김병화 역/ 김영사
서울은 600년 넘게 수도역할을 수행하는 애환(哀歡)의 도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주변에는 여러 신도시가 있다. 해외에서는 수백 년간 누적되어 완성되는 도시기능을 단 몇십 년 만에 수십만 인구를 수용하는 국내 신도시들을 경탄한다. 쿠웨이트와 같은 중동국가는 한국의 신도시 개발역량과 운영능력을 수입하려고 한다. 이제 우리가 보유하는 역량과 특성에 대해 해외전문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구태스럽지만, 도시사회학분야 석학인 ‘리처드 세넷’의 평가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책의 결론을 거칠게 정리하면, 도시는 행정구역과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빌(ville)’과 거주하는 장소로의 ‘시테(cité)’는 끊임없이 불일치를 반복하지만, ‘열린’ 개방형 빌과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하는 시테로 조정되고 재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현대도시는 디지털 기술로 교정되거나 처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거나 과도한 사용자 친화적 기술들로 인해 구글플렉스와 송도신도시처럼 폐쇄적이면서 개인주의적 특권구역/지역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경고한다.
급격한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고유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차단되는, 그래서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중국 상하이의 시쿠멘구역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도시를 박물관으로 바꾸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라지면 애석할 과거와 연결할 수 있을까?(172p)’라며 독자에게 묻는다. 이 대목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의 도시들도 ‘복원’이라는 클리셰로 도시가 박물관화(化)되고 상품화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시를 위한 윤리’라는 부제목에 맞게, 개방형 빌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지침(!) 5가지를 제시한다는 점이 여타의 학술서와 다르며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필자에게 강렬하게 와닿은 점은, 현대도시 시민의 가져야 할 행동강령으로 저자가 ‘소소한 예절(211p)’을 언급한 대목이다. 낯선 이웃과의 짧은 대화가 익명의 현대도시에서 정중하고 적절한 가면의 기능을 하면서 이방인과의 유대감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작은 인사말이 거대하고 물리적 도시환경과 관련이 있으며 집단 간 갈등해소에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는 분석이 인상적이다. 최근 유럽도시에서 일어나는 이방인(현재는 무슬림이지만 100년 전에는 유대인)에 대한 배척하는 현실과 코로나 이후 점점 더 멀어지는 ‘거리두기’ 현상에 윤리적이면서도 실천적 대안처럼 읽힌다.
제목에서 ‘짓기’와 ‘거주’라는 단어로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기반한 논지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도피성 현존재에 대해 현대도시에서는 대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자를 거부하고 기피하는 간접적 행위라며 비판한다. 짓는 계획으로서 빌(ville), 거주하는 시테(cité), 이 둘의 개념이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현대도시가 지향해야 할 특성으로, 철 지난(?) 로버트 벤투리의 ‘불명료함, 다(多) 의미, 복잡성’을 여러 번에 걸쳐 인용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