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11월의 나무

2024-11-26     함성호 시인

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1998년

칼럼니스트 강성곤 교수의 말처럼 “뭣 좀 배우고, 술에 절어보고, 죄도 많이 짓고, 후회와 기교를 반복하는, 한국 아저씨들 감성에, 황지우는 역시나 강력”하다. ‘여전히’ 강력하다고 할까? 황지우의 시 중에서도 잘 된 시라고는 할 수 없는 이런 시에서도 황지우의 후회는 강력하다. 그것은 그의 후회가 역사와 정치를 넘어 일생의 나무와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시경’을 선집할 때의 기준이 ‘사무사(思毋邪)’다. 직(直)이야말로 시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