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는 그동안 전통적인 설계에만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한 게 아닐까
건축사신문의 원고 제의를 받고 처음 건축사신문에 기고했던 2022년 4월의 기사를 다시 읽어봤다. ‘변화하는 시대와 젊은 건축사’라는 제목의 글에는 부동산 경기에 맞춰 회사가 급성장 하면서 느낀 점과 호황의 후폭풍으로 인한 걱정 등이 담겨 있었다. 시일이 지금, 그때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2년 전만 해도 건축시장 활성화로 단독주택과 꼬마빌딩의 수가 증가했다. 그런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식어버렸다. 그로 인해 2023년 초부터 진행한 프로젝트의 중단, 미착공, 사업권 매각, 미불·체납 등으로 인해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재무 상태가 빠르게 악화됐다. 건축사사무소마다 직원 감원, 자산매각, 폐업 등 각자의 생존전략으로 변화에 대처해 오는 상황이다.
더욱이 건축사자격시험 합격자 수가 천 명대로 늘어나면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신입 건축사들의 포트폴리오가 될 건축프로젝트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더불어 이자율과 물가상승으로 경기침체는 민간 건축경기를 얼어붙게 만들어 건축사들이 공공 설계공모에 의존하게 됐다. 이로 인한 풍선효과로 현상 설계공모는 과포화 돼 소모적이고 과다 경쟁을 초래하고 있다. 신규 건축사의 창의적인 제안들도 당선작을 제외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예 건축시장이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TV나 유튜브 채널을 보면 공간 전문가, 공간 컨설팅, 공간 디자이너 등으로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트렌디하고 다양한 공간을 제시하면서 시장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실내 공간 위주의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건축, 브랜딩, 자금 펀딩, 운영컨설팅, 경영노하우 전수 등 단순 디자인만이 아닌 소비자의 니즈를 복합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회사로 브랜딩 한 뒤 기획부터 설계, 시공, 운영까지 건축주에게 제공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시장 구매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집 찾기 프로그램인 ‘구해줘홈즈’, 카페 개조 프로그램인 ‘동네멋집’ 같이 최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타 분야 전문가들이 공간 설계만이 아닌 다방면의 솔루션을 제공하며 높은 부가가치와 블루오션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건축사들은 이러한 시장은 놓치고 전통적인 설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게 아닌가 싶었다. 건축사의 업무대가 기준에 따르면 건축사의 업무범위를 기획부터 설계, 인테리어, 유지관리 등의 수행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전통적인 설계, 감리 분야에만 한정해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올 불경기는 지금 겪는 어려움보다 더 클 것이라고 한다. 금리가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제로금리 가 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높은 물가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저하로 이어진다. 강남, 용산 등의 트로피 부동산으로 역할이 가능한 한정된 지역의 높은 부가가치의 설계는 공간 인플루언서와 외국 아키텍트가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소수의 한정된 건축사만이 이들과 경쟁하여 프로젝트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축사사무소 간의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필자는 개업 후 8년이라는 시간동안 세상의 변화는 점차 빨라졌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사무실을 운영해왔다. 너무 최적화 돼 부가가치가 점점 낮아지는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준비와 도전을 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체 역량을 높여 위기에 대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앞으로의 사회의 변화에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해자를 구축해 누구보다도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