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건축사, 건축가 호칭 혼란에 대한 소모적 논란을 끝낼 때다
건축 설계를 본업으로 하는 직업의 호칭을 두고 수십 년째 이어지는 논란은 이제 지겨움을 넘어 해결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 근대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이 직업의 정체성을 법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로 정리했다. 특히 산업적 제도화가 정착된 국가들은 국가 면허나 자격으로 이 직업을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건축사연맹(UIA) 용어 규정에도 명확히 명시돼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서구에서도 초기에 비슷한 혼란이 있었으나, 대부분 ‘Architect’라는 호칭을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만 사용하도록 정리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건축사’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혼선을 피하기 위해 이 호칭을 통일해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건축가’라는 용어의 법적 혼란이다. 영어의 ‘Architect’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적 자격을 부여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며, 이는 법적으로 보호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과정에서 혼란이 생기고, 건축가라는 단어가 무자격자들에게까지 널리 통용되면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자동 번역기가 ‘Architect’를 ‘건축가’로 번역하면서 일반인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유튜버들은 작품성에 중점을 두는 이를 건축가로 부르기도 하지만, 호칭과 작품성은 아무 관련이 없다. 직업에 대한 정체성과 권위를 보장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함에도, 건축 설계를 수행하는 주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 건축사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준공식에서 시공사는 호명되지만 건축사들은 무시되거나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건축 설계 직업 호칭 두고 수십 년간 논란 지속
대부분 국가에서 ‘Architect’는 법적 자격자에게만 부여
일제강점기 일본 용어 혼용이 국내에 영향 미쳐
일본은 이후 ‘건축사’로 법적 명확성 확립해 정착
호칭의 법적 통일 어려우면 무자격자 사용 제한해야
위반 시 구속 또는 1억 원 이상 벌금형 등 강력 제재 필요
건축사 감리와 비교해도 국민 안전에 중대한 사안
이러한 혼란은 일제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처음에는 ‘건축가(建築家)’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법적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건축사(建築士)’로 재정의했다. 하지만 두 호칭이 혼재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제도를 일부 차용하면서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날의 문제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은 법적 시스템의 엄격한 적용 덕분에 ‘건축사’ 호칭이 정착됐고, 일본건축가협회(JIA)는 1급 건축사 자격 취득 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정회원으로 선발함으로써 호칭에 대한 혼란을 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 설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두 호칭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며, 일부 가구업자들조차 ‘건축가’라는 호칭을 명함에 사용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피해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무자격자가 건축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로 인한 혼란과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호칭을 법적으로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면, 무자격자의 호칭 사용은 제한돼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신체적 구속이나 1억 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이는 건축사 감리의 경우와 비교해도 국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1997년 법 개정 이후 건축사 호칭 관리에 엄격해졌고, 국가 기관인 영국건축사등록원(ARB)이 호칭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안도 다다오와 같은 유명 건축사들이 자격을 취득한 후 당당히 ‘건축가’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착됐다. 이런 해외 사례를 참고해 건축사법에서 ‘건축가’를 명확히 해 일반 시민이 착오로 무자격자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의 명확성을 통해 건축사의 독자성과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다.
90년대 초반 월간 이상건축에서 류춘수 건축사님도 이 문제를 지적하며 호칭 정리를 주장한 바 있다. 이제는 이러한 혼란을 넘어 현재의 난국을 뚫고 나갈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건축사라는 직업의 독자성과 권위가 무분별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로운 해결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