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원형을 만나다’, 2024 한옥건축설계교육 현장 실측…“한옥 설계 전문인력 양성 및 건축문화자산 전문가로서의 역량 강화”

[르포] 경주 양동마을 한옥건축 현장 실측 및 답사 조선시대 한옥인 ‘영귀정’과 ‘설천정사’ 실측 평면도, 종횡단면도, 축부입면도 등 실습 통한 도면화 경험 건축사교육원, 4개월 과정 한옥 건축 전문인력 양성 목적 자체 교육 수강생들로부터 높은 호평, ‘교육 기간 내 최대 실습 효과’

2024-11-04     박관희 기자
10월 25일, ‘2024 한옥건축설계교육 현장실측 및 답사 교육’이 경주 양동마을에서 시작됐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교육원은 2024 한옥건축설계교육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옥 현장실측 프로그램을 10월 25일부터 10월 26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했다.

2024 한옥건축설계교육은 협회가 지속 가능한 한옥 설계 전문 교육을 통해 한옥 건축산업의 선도 인력을 양성하고, 한옥의 산업화와 대중화에 대비하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 교육은 건축사를 대상으로 시행되며, 이론 교육뿐만 아니라 전통 한옥 답사와 실측이 병행돼 건축문화자산 전문가로서 역량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10월 25일 아침, 건축사회관 앞에는 교육생들이 이동할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교육생 30명과 강사진, 건축사교육원 유재우 운영위원장(대한건축사협회 이사) 등을 태운 버스는 오전 8시에 한옥 실측이 이뤄질 경주 양동마을로 출발했다.

경주 양동마을 전경.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네 시간 반 만에 도착한 양동마을에서는 우선 일행의 숙소 배정이 이뤄졌다. 평소 숙박이 어렵기로 유명한 향단 등에 묵게 된 일행들은 기쁨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여강) 이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씨족마을)이다.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 내 건축물들은 조선 전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장 잘 구현한 모범 사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역사 마을인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민속문화재이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와집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국보 1점, 보물 5점, 국가민속문화재 12점, 경상북도지정문화재 8점 등 총 26점의 지정문화재를 자랑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지락 선생이 교육생들에게 무첨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수강생들은 4인 1조로 구성된 1~8조로 나뉘어 국가유산청 수리기술과 김재길 과장의 인사말과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류성룡 교수의 설명을 들은 후, 양동마을의 대표적 보물인 무첨당으로 이동했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의 종가 종택으로, 현재는 이지락 한국국학진흥원 객원연구원이자 17대 종손이 거주하고 있다.

이지락 종손은 “정남향으로 지어진 무첨당은 500년 된 건축물로, 자연의 생명력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로 설계됐다”며 “과거의 건축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건축은 선이 분명한 만큼, 건축사 여러분들께서 공간 기획과 건축 설계를 하실 때 보존과 활용에 대해 깊이 고민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한옥 실측은 양동마을 내 영귀정과 설천정사에서 이뤄졌다. 영귀정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젊은 시절 학문을 수학한 곳이며, 설천정사는 회재의 셋째 손자인 설천정 이의활 선생의 강학 공간이었다. 1조부터 4조는 영귀정을, 5조부터 8조는 설천정사를 실측 무대로 삼아 실측을 진행했다.

실측에 나서고 있는 교육생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영귀정을 실측하던 2조의 한 수강생은 “정형화되지 않은 부재를 사용했음에도 건축의 기능과 미에서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 놀랍다”며 “다만 이를 실측해 도면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제”라며 어려움을 귀띔했다.

◆ 현택수 경상북도 총괄건축가
“전통건축은 자연에 순응하며 동화하는 것을 목표”


1일 차 실측 일정이 종료된 저녁에는 현택수 경상북도 총괄건축가가 참가한 세미나가 열렸다. ‘전통건축에서 읽는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현택수 총괄건축가는 “전통건축의 가치를 이어갈 생명력의 근간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첫날 실측을 마친 저녁에는 현택수 경상북도 총괄건축가의 강연과 세미나가 이어졌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현택수 총괄건축가는 기본적으로 전통건축이 남다른 특성을 갖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자연을 요소로 품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동마을은 다른 지역과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지되 시간과 공간의 범위에서는 동질성을 확보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서양건축이 자연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전통건축은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동화되는 것을 꿈꾼다”며 “건축 행위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의미를 담기 좋은 요소가 있다면 바로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이라고 부연했다.

2일 차 아침에는 류성룡 교수의 지도 아래 향단에서 하룻밤을 보낸 수강생들이 기와를 나르고 물꼬를 내는 등 양동마을의 일손을 돕기도 했다. 조식을 마친 후에는 다시 조별로 영귀정과 설천정사 실측 교육이 이어졌고, 오후에 양동마을 답사를 끝으로 2024 한옥건축설계교육 현장실측 일정이 마무리됐다.

향단에서 기와를 이용해 낙수받침을 만드는 교육생들. (사진=고려대학교 류성룡 교수)

한편, 협회 건축사교육원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옥건축설계교육은 명확한 교육 대상과 목표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연속성 있는 교육과정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4개월 과정으로 마련됐다. 특히 이론 과정에 더해 실습 과정을 통해 평면도, 종횡단면도, 축부입면도, 양시 및 지붕 평면 등을 실측해 도면을 완성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어 수강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건축사교육원 유재우 운영위원장은 “협회의 한옥건축설계 실측교육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 수강생과 강사진, 그리고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자 업무협약을 맺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는 국가유산청의 협조에도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협회는 전문성과 시의성을 갖춘 교육과정 개발을 통해 한옥설계 인력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니 인터뷰]

“단순 한옥 실측 넘어 전통 건축 문화 이해하는 시간 되길”

최승호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사이시옷(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는 실습 강사로서 건축사 수강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최승호 건축사는 건축설계를 배우는 대학에서 전통건축 관련 커리큘럼이 부족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그는 협회가 추진하는 한옥건축 설계교육이 ‘K-건축’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양동마을 현지에서 만난 최승호 건축사와 함께 한옥건축 설계교육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Q. 이번 한옥건축설계교육 현장실측 교육 현장 분위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지난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현장 실측 교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번 실측은 지난 9월 11일 진행된 1930년대 서울 도시한옥인 ‘홍건익 가옥’ 실측에 이은 두 번째 실측으로, 조선시대 정사 한옥인 ‘영귀정’과 ‘설천정사’를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두 건축물은 규모에 비해 복잡한 구조 양식과 화려한 장식으로 마감돼 있어, 교육에 참여한 건축사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실측을 완료하기 위해 다소 긴장했으나, 1차 교육의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과정을 소화해 낸 것 같습니다.

Q. 현장실측을 위해 양동마을이 선정된 것에 대한 의견과 현장 실측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양동마을은 한국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한옥마을 중 하나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이번 현장 실측 장소로 양동마을이 선정된 이유는 단순히 한옥을 실측하는 것을 넘어 조선시대와 우리나라 전통 건축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측 과정에서 무첨당의 종손과 향단의 종부를 만나 500년 동안 한옥을 지켜온 종갓집의 삶에 대해 알아봤고, 저녁에는 경상북도 총괄건축가인 현택수 교수님의 세미나가 열려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Q. 건축사협회는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과정에서 개선할 점이 있다면?
현재 협회의 많은 노력과 지원으로 약 30명의 교육생들이 한옥 설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매주 1회씩 약 4개월간 실측, 조사, 설계 교과 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나, 짧은 교육 기간에 비해 교육 내용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연 2회 교육을 실시하거나 기초반(실측, 조사)과 심화반(설계)으로 나눠 진행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Q. 한옥건축설계에 대해 관심이 있는 건축사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요즘 교과 과정이나 수능에서 국사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건축설계를 배우는 대학에서 한옥이나 전통건축에 대한 교과 과정이 없는 것이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K-Culture’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지금, 협회에서 8회째 맞이하는 한옥건축 설계교육이 ‘K-Architecture’로 향하는 발판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