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전태일 옛집 살리기

2024-10-24     정형봉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이인건축 <대구광역시건축사회>
정형봉 건축사(사진=정형봉 건축사)

3년 전부터, 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에서 건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태일이 세들어 살았던 옛집을 복원하는 시민단체인 ‘전태일의 친구들’로부터 간단한 건축자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참가하게 되었는데, 하다보니 어렵고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씨엔건축사사무소 최기현 건축사와 함께했고, 과정에서 건축사로서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게 됐으며, 감사하게도 시민들에게는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판자집 셋방에서 1963년에서 1964년까지 살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태일의 흔적인 이 집은, ‘전태일 일기’에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평가 받은 바 있다. 2020년 대구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게 됐지만, 살펴보니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주인집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전태일의 판자집 셋방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발굴작업을 통해 셋방터 주춧돌을 발견하고, 3.5m×3.8m의 절반크기에 다섯 식구가 살았음을 확인했다.  

옛집 살리기의 첫 단계로,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이 진행됐다. 철거하고 새로 짓자는 의견과 그대로 보전하자 등등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조율하였고, 옛집 살리기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부터 복원공사비 예산 및 조달문제 등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했다.

시민들과의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와 현실과 이상의 차이 극복 등 힘든 과정을 거쳐 결국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주인집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고, 전태일의 셋방터에는 건축물이나 과도한 오브제를 설치하지 않고 최대한 빈 공간으로 만들어 전태일의 정신을 표현하기로 하였다. 

(자료=정형봉 건축사)

필자는 기획 및 조정을, 최기현 건축사는 설계를 담당했고, 동네목수 조기현 시인이 시공을 맡아 지난 5월 4일 착공, 오는 11월 13일 전태일 54주기 기일에 준공할 예정이다. 공사비 마련을 위한 시민모금운동에 많은 대구시건축사회 회원님들이 참가해 주셨다. 어려운 사무실 형편에도 기꺼이 후원해주신 대구시건축사회 회원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35년전 ‘이집트 구르나마을 이야기’를 읽고, 민중 속에서 그들을 위한 건축을 추구한 ‘하싼화티’의 삶을 건축 지표로 삼았지만, 지난 세월 개인적인 삶의 만족만 추구하며 살아왔다. 친구의 부탁으로 아무 생각없이 참여하게 된 ‘전태일 옛집 살리기’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대학생 때의 건축적 신념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준 특별한 기회였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전문직은 ‘고도의 전문적 교육과 훈련을 거쳐서 일정한 자격 또는 면허를 획득함으로써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독적점,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공공사회에 있어서의 사회적 책임도 수행해 나갈 줄 아는 공적 시민으로서의 성숙성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