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답사수첩]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
도리마을은 경주에서 북서쪽으로 제법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마을 주변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심곡지라는 큰 연못이 있다. 경주보다는 오히려 영천에서 가깝고, 은행나무 숲은 마을의 앞쪽에 자리하고 있다.
은행나무 숲은 8개 필지 2만 3,000제곱미터 규모로 모두 개인 사유지다. 나무 수령은 50년 안팎이어서 은행나무 높이는 수십 미터에 달한다. 처음에는 묘목 판매를 목적으로 심은 수많은 은행나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숲을 이루게 됐다. 열을 맞춰서 빽빽하게 나무를 심은 덕에 자작나무처럼 위로만 쭉 뻗은 늘씬한 은행나무가 이국적인 정취를 뽐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알음알음 찾아가던 비경이 사진작가들이 매해 이곳을 찾고, 웨딩 촬영 성지로 불리면서 이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방문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먹거리 장터, 특산물 장터를 운영해 즐길 거리를 더하고 있다.
숲의 조성과 갈등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은 김 씨의 부친이 선조들의 고향인 이곳 도리마을에 마을회관을 기증하고 은행나무숲도 조성한 곳이다. 선생은 도리마을 은행나무숲뿐만 아니라 경주 동남산 기슭 옛 임업시험장(현 경북산림환경연구원), 통일전 앞 은행나무 가로수길 등 경주의 유명 단풍 명소를 기획하고 조성해 직접 가꾼 이로 지금의 경주 대표 단풍 명소를 일군 주인공이다.
특히 서면 도리마을은 50년 전, 김 선생이 가난한 산골 선조 마을에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당시 수익성이 높은 은행나무에 주목해 1970년~1973년까지 4년에 걸쳐 7000여 평, 8개 군락지에 은행나무 숲을 조성해 오늘날 50년생 은행나무숲이 장관을 이뤘고 실제, 10여 년 후 도리마을 주민들은 은행잎을 독일로 수출해 자녀 학업 뒷바라지에 보탰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단풍나무 숲은 숲 소유자와 인근 주민들 간의 갈등과 사유지 매입 요청을 둘러싼 논쟁으로 주민의 밭과 접해있는 1개 필지 1500여 제곱미터에 있던 은행나무 1천여 그루를 모두 베어냈다. 그 후로 추가 벌목이 일부 진행되었으나 경주시의 중재로 벌목이 중단되었다. 벌목 중단으로 은행나무가 살아남았지만 향후 부지 매입과 관리를 통한 숲 활성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국적인 풍경의 단풍나무 숲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길의 오른쪽에 잘 뻗은 좁은 은행나무 숲이 방풍림처럼, 가로수처럼 죽 늘어서 있다. 여기서 약 150미터 정도 들어가면 도리마을 공영주차장이 나온다. 만차 시 인근 농협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으며 주차관리 요원이 평일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은행나무 구역은 크게 네 군데로 조성(작년 기준)이 되어 있고, 마을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각 구역은 조금씩 떨어진 위치에 적당한 규모로 자리하고 있다. 산책하기 좋은 굽은 마을 길로 들어서면 황화 코스모스가 마치 도로와 경계처럼 은행나무 앞을 두르고 있다. 길 옆에 보이는 건물 담벼락에는 예쁜 그림과 글이 동화 속 풍경처럼 다가오고 은행나무에 단풍이 들면 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단풍이 들기 전의 숲 속은 마치 자작나무 군락에 들어선 듯하다.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일반적으로 노란 은행나무를 볼 수 있으나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빼곡히 들어 찬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노란 은행잎 사이로 파란 물감을 흘린 듯하다. 열을 맞춰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은행나무의 그림자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록 은행나무 일부가 잘려 나가 예년처럼 풍족한 숲이 되지는 않겠지만 남은 은행나무와 함께 동화 같은 마을의 풍경, 숲 속의 환상적인 풍경은 올해도 그리고 다음 해에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길 3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