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잠시, 산다
2024-10-10 함성호 시인
잠시, 산다
- 서연우
안녕하고 웃어야 하는데 그만둔다 아이의 얼굴을 한 아이가 있고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가 있어 저녁의 파티는 엎어졌다 가라앉은 시선 옆으로 꽃들이 부서져 있다 아이는 분명 전생의 기억을 안고 두 번 째 생을 사는 것 같고 그걸 드러내지 않은 채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울처럼 나는, 잠깐 떠오르다 멈춘 비밀을 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고 사람마다 기억하는 첫 번째 계절 봄을 기억해 본다 숨죽이고 있는 커튼 뒤의 세계 내가 보이는지 알고 싶었던 이 세계 자기 자신을 알아 보게 될 때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은 뜻하지 않을 때 뒤돌아보는 것 자신보다는 자신의 문장조차 알아보지 못할 텐데 전생의 내가 몰래 숨어들어 이생의 내가 누구인지 알 때까지, 나는 잠시 대지의 한 호흡으로 있다
*티레시아스
- 울 동인 2집 ‘세계에 한 소녀가 또 사라진다’ 중에서/ 사유악부/ 2024년
오이디푸스의 요청으로 테베의 궁전에 온 예언자 티레시아스는 곧 후회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아아, 지혜가 아무 쓸모없는 곳에서 홀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 시는 우리의 운명처럼 전혀 예기치 못한 공간으로 계속 독자를 데려 놓는다.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는다. 그러나 이 시에서 그런 연속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동기술적으로 읽히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도약과 불연속의 형식으로 생의 비의를 얘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