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해외 선진국 사례에서 배운다…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 위한 실질적 방안은?

“공정한 설계비 산정·법적 보호로 건축사 역할 강화하고 설계 품질 높여야”

2024-09-25     장영호 기자

대한건축사신문은 그간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의 건축사 업무대가 관련 해외 사례를 소개해왔다. 이번 종합 기사에서는 그동안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두 차례에 걸쳐 한국 건축사 대가 정상화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각국의 건축사 업무대가 제도의 특징과 현황을 살펴보고, 두 번째 기사에서는 국내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는 국내 건축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설계 품질 향상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본지는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건축사 대가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각국의 선진 사례에서 시사점을 도출해 국내 상황에 적합한 적용 방안을 제안한다.

먼저, 공정하고 명확한 설계비 산정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의 HOAI(Honorarordnung für Architekten und Ingenieure)와 일본의 ‘건축사 업무 보수기준’은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적용되는 법적 설계비 산정 체계로, 설계비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산정할 수 있도록 한다. 국내에서도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 설계비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업무 단계별 대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독일 HOAI처럼 프로젝트의 규모와 복잡성에 따라 체계적인 설계비 산정 기준을 마련하면, 불투명한 설계비 산정 관행을 개선하고 건축사의 전문성에 맞는 공정한 보상을 보장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건축 설계 과정이 단계별로 세분화돼 각 단계에서 요구되는 업무와 대가가 명확히 구분된다. 국내의 3단계 설계 체계를 프랑스의 방식을 참고해 세분화하면 설계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프랑스의 ESQ(Les études d'Esquisse) 단계는 프로젝트 초기 기획에서 건축물의 용도와 주요 요소를 설정하고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로, 국내의 기획업무와 유사하다. APS(Les études d'Avant-Projet Sommaire) 단계는 건축의 기본 틀을 잡고 법규와 예상 공사비, 공사 기간을 검토하는 과정이며, APD(Les études d'Avant-Projet Définitif) 단계에서는 설계의 구체화와 재료 선택, 비용 확정을 진행한다.

PRO(Les études de Projet) 단계에서는 최종 설계가 확정되고, 이후 ACT(L'Assistance aux Contrats des Travaux)와 EXE(Les études d'exécution) 단계에서는 입찰 및 시공 관리, 그리고 준공 검사를 통해 설계와 시공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이러한 프랑스의 체계를 참고하면 국내 설계 과정에서도 업무 분담과 대가 책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설계변경은 프로젝트 진행 중에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미국 AIA 표준계약서에서는 설계변경이나 추가 업무에 대해 명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 공정한 대가를 보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공 발주기관이 설계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 건축사들이 추가 업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계변경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계약서에 이를 포함시켜 발주기관이 설계변경 시 그에 따른 보상을 인정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설계 변경 횟수와 추가 업무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면 건축사들이 예상치 못한 추가 업무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며, 발주기관과의 협력도 원활해질 수 있다. 이러한 보상 체계는 설계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건축사의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건축사의 법적 보호를 강화해, 설계 변경이나 자재 대체 시 건축사의 승인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건축사의 권리와 책임이 명확히 보장되고, 건축사의 전문성이 설계 全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보호는 건축사들이 설계비를 정당하게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건축물의 품질을 보장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건축이 문화적 표현으로 인식되며, 건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평가된다. 국내에서도 건축사를 단순한 설계자가 아닌, 도시와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전문가로 바라보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건축사가 공공의 이익과 건축물의 품질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건축연구원 김용준 책임연구원은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는 건축서비스의 품질 확보와 우리나라 건축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요한 과제”라며 “설계업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명확히 하는 법적 장치, 그리고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설계 품질 향상과 국내 건축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