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우리시대 어머니처럼 살아온 애환(哀歡)의 도시, 서울

2024-09-25     이상효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트임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표지(사진=한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손정목 저/ 한울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나이 지긋하신 택시기사분들에게 서울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의 어느 도시나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서울만큼 애환이 서린 도시가 있을까? 저자 손정목의 이 책은 1970년부터 서울시 도시계획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서울도시계획에 관한 경험과 기록들이다. 행정관료 입장에서 서술된 이 책은, 깊이 있는 학술서는 아니지만 저자의 기록은 방대하고 정확하여 입담 좋은 택시기사로부터 듣는 생생한 구술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 그 격동기의 중심에 ‘서울도시계획’이 있었다. 사실 도시계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울은 하루하루 다르게 달라졌다고 한다. 압구정동, 반포, 잠실지구는 공유수면(홍수로 자주 범람하는 하천)으로 분류되었다가 1970년대 매립공사로 없었던 대지(垈地)가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당시 잠실은 강남이 아닌 ‘강북’이었다.

서울도시계획의 파급효과는 지형과 공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970년대 잠실지구 15층 규모의 고층(!) 아파트가 연탄난방방식에서 중앙난방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아파트 주부들의 여가시간이 형성되었고, 주부모임과 함께 주변상권이 활성화되었다. 단지별 부인회들이 생겨나면서 주부들의 모임이 조직화 되고 주거생활권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탁기’의 발명만이 여성의 여가시간과 권익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도시계획도 여성권익에 영향을 준 것이다(3권 230p).

모두 총 5권의 분량으로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가지 방식으로 골라 읽기를 추천한다. 읽는 이의 중/고등학교 시절과 맞는 시대를 골라 읽는 방식과 서울에서 연고가 있는 지역들을 골라 읽는 방식이 있다. 콘텍스트를 중시하는 건축사라면 미처 몰랐던 일화와 사회적/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놀랄 것이다. 

다른 한편, 책을 읽으면서 서울이 겪어온 서사가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애환’이 연결되어 있음은, 필자만이 갖는 직감이 아닐 거라 믿는다. 부모님 세대를 ‘기계적이면서 수동적인 세대이며 때로 부도덕한 세대’로 매도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이룩한 도시인프라를 마치 나의 것인 마냥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