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축물 에너지 소비 제도의 획일성을 고민해야 할 때

2024-08-26     김한중 건축사‧그라운드아키텍트 건축사사무소
김한중 건축사‧그라운드아키텍트 건축사사무소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지나온 여름이 이 정도 더위는 아니었는데 걱정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몇 해 전 런던과 파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건축주와 서울에 레스토랑을 만든 적이 있었다. 미팅 자리에서 인테리어 마감을 신경 쓴답시고 에어컨을 숨기는 디자인을 제안하자 건축주는 그 귀한 것을 왜 감추느냐며 시원하게 꺼내놓으라 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건축주가 주로 생활하는 유럽에서는 식당 내 에어컨을 설치하는 절차가 허가제로 운영 중이고, 실제로 이 허가를 얻기가 매우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다는 자체가 식당의 자랑이자 여름철에 손님이 들어오게 하는 요인이었다.

도시뿐 아니라 교외 시골 지역까지 그 어느 공간도 한여름을 에어컨 없이 지내는 상상을 하기 어려워졌다. 밤 기온이 선선한 듯해 창문을 열었다가 여기저기서 돌아가는 실외기 소리에 다시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기가 일쑤다. 에어컨을 켠 실내가 시원해지면 골목 어딘가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에어컨을 켠다.

인허가 실무단계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작성하는 에너지 절약계획서는 어느 순간부터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됐다. 건물을 빙 두르는 단열재를 평균 내 열관류율을 산정하고 숫자 안에 들어오면 통과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꼼꼼히 단열 옷을 입은 얄미운 새 집들이 온몸이 녹아내리는 한 여름 저 혼자 살겠다고, 자기만 시원하겠다고 뜨거운 공기를 골목에다신나게 내뱉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에어컨이 없는 어딘가의 도시를 생각하며 가끔 이렇게 단열재의 의미를 삐뚤게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분명 더위와 추위에 대해 덜 민감하거나 불편함을 참을 의지가 많을 수 있는데, 우리의 바깥은 이미 극한의 열기와 냉기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약 설계 제도는 정작 에너지를 소비하는 열원에 대해서는 큰 규제를 두지 않는다. 규정에 맞게 단열재만 둘렀으면 얼마든지 에너지를 쓸 자격이 있다. 우리는 단 1°C도 참으려 하지 않으면서 건물에 단열재를 두르는 것만을 해결책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는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에 대한 제도의 획일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획일성은 우리가 더위나 추위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가끔 집에 대해 상상한다. 여름에는 그늘이 시원하고 바람이 잘 들어 그럭저럭 더위에 적응해 에어컨이 없고, 겨울에는 침실을 주변으로 작은 공간만 덮이고 거실과 나머지 공간들은 침실의 온기에 기대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지내는 집 말이다. 적어놓고 보니 어쩌면 오랜 시간 이 땅에 맞춰 적응한 한옥에 대한 설명 같기도 하다. 도면으로 상상하면 아마도 이 집의 대부분의 공간은 지금의 기밀성과 단열성 규정에 맞지 않을 것이다. 얇은 벽과 간단한 창을 가진 평면을 가지고 허가권자를 설득할 생각을 하니 아찔해진 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집들이 있는 동네의 여름 풍경은 지금이랑 다를 것이다. 집들의 창문은 활짝 열려있고 골목은 다시 머물만한 곳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