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답사수첩] 한여름의 피신처, 청도 와인터널

2024-08-12     김진섭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라온

언제부터 인류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부터 포도를 먹었으며 최초 양조법은 포도의 자연발효를 인간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어원은 라틴어의 비넘(Vinum, 포도로 만든 술), 이태리 비노(Vino), 독일의 바인(Wein), 프랑스의 뱅(Vin), 미국의 와인(Wine) 등으로 불린다.

와인터널 원형 입구. (사진=김진섭 건축사)

그리스는 와인을 생산한 최초의 유럽 국가이며, 로마에 와인을 전해주었다. 로마는 주둔지 근처에 적군이 숨지 못하도록 나무를 베어내고 포도나무를 심었고, 배탈을 막기 위해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와인은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으로 확산되어 프랑스 수도원에서 학문적인 기술이 연구되었고 18세기에는 병과 코르크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19세기 파스퇴르에 의해 미생물에 의한 발효가 발명되어 양조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되었다. ‘신의 물방울’, ‘생물의 물’이라고 불리는 와인은 현재 약 50개국에서 연간 250억 병이 만들어지고 있다.

근대 역사의 현장
청도 와인터널은 1905년에 개통된 옛 경부선 열차 터널(길이 1015m, 폭 4.2m, 높이 5.3m)을 정비하여 2006년 3월에 감와인 숙성을 목적으로 개장하면서 와인터널로 명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연간 100만 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는 청도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터널은 연중 15℃ 온도와 60~70%의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다량의 음이온이 어우러진 와인 숙성의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와인터널은 감와인 숙성고, 시음장, 전시판매장 그리고, 감 와인 만들기 체험장 등과 와인과 예술을 접목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주변의 명소와 연계하는 테마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터널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아군의 각종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1960년대 말까지는 버스 등이 통과하는 국도로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경부선 개통 초기에는 서울~부산 간 열차 요금은 80㎏ 쌀 172가마니 값이었고 지금 화폐단위로 환산해 보니 무려 3백 4십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열차 요금이었다.

와인터널은 토목건축공학적인 구축물로서의 미적 가치가 돋보여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촬영지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터널 주변에는 당시 터널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기 위하여 임시로 부설한 선로의 흔적과 급경사 극복을 위한 철도 기술인 Switch-back 선로 등이 아직 남아있어 철도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와인숙성고. (사진=김진섭 건축사)

와인터널(Wine Tunnel)
와인터널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청도 특산물인 감식초, 감말랭이, 복숭아 등을 파는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원형으로 된 터널 입구에는 감 조형물과 함께 대천성공(代天成功)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천황을 대신해 터널 공사를 완수한다.’라는 뜻으로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뜨겁고 습한 여름 날씨에 땀으로 젖은 몸이 터널을 들어서자마자 서늘함과 함께 청량함을 느낀다. 처음에는 입장료를 받았으나 현재는 무료로 개방한다. 터널은 3겹으로 정교하게 쌓은 아치형 붉은 벽돌 천정이 눈에 띄게 아름답다. 이 벽돌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벽돌 표면에 간혹 보이는 검은색은 당시 증기기관차가 다닌 흔적들이다.

감은 포도보다 10배나 많은 타닌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술의 맛이 깊고 풍부하다. 깔끔하고 부드러우며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린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만찬주로 등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8년과 2013년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 사용되며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

조금 더 들어가면 청도 와인터널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난다. 커다란 잔과 와인을 따르듯 기울어진 병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거대한 오크통 행렬이 이어진다. 와인 종류와 용량이 적힌 이름표를 단 오크통에는 술이 익어가고 있다. 수백 개의 와인병이 쌓여 있는 케이지가 길게 이어지는 곳도 있다. 세월만큼 묵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요히 익어가는 와인병들을 배경으로 SBS 드라마 ‘떼루아’의 두 주인공이 포옹한 로맨틱한 장소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주소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00(송금리 산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