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건축사 양성 경로의 다양성과 유연성 모색

2024-08-12     김영애 교수 ·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김영애 교수 ·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사진=김영애 교수)

우리나라의 건축사 양성 체계는 과거에는 4년제 건축(공)학과 교육과 5년의 실무 경력을 거친 후 건축사 필기·실기 시험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면서 건축 분야의 시장 개방에 대처하고 건축사 자격 상호 인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2002년 5년제 대학교육이 도입된 이후, 건축학사 5년과 실무수련 3년 또는 건축학 석사 2~3년과 실무수련 3년을 거친 후 건축사 시험을 통해 건축사가 양성되고 있다.

2012년의 건축사법 개정으로 인해 2020년부터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졸업 후 5년 이상의 실무경력으로 대학 5학년 및 대학원 2~3년 교육을 대체해 예비시험 자격을 주던 건축사예비시험 경로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는 5년제 대학 졸업자가 아닌 경우, 건축사사무소에서의 실무경력이 건축사보로는 인정되지만, 건축사자격시험에서 요구하는 건축사등록원의 실무수련으로는 등록할 수 없게 됐다. 일부 미인증 5년제와 대학원 졸업자(시행령 기준 충족자)는 2023년까지 실무수련 등록이 가능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12년부터 개인교육이력평가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졸업자들은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의 교육이력평가제도를 통해 교육을 인정받을 수 없고, 건축사등록원에 실무수련자로 등록할 수도 없다. 그래서 건축학교육인증원의 2012~2024년 자료에 따르면, 총 534명의 개인이력평가 신청자 중 해외 또는 국내 비인증 5년제 졸업자가 512명으로 95.9%를 차지했으며, 4년제 대학 또는 전문대학 학사는 여전히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근의 건축사 시험자격 개선 논의 과정에서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에서는 교육을 실무로 대체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5년제 교육과정 기준에 맞춘 보충교육을 마친 경우에만 실무수련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는 청년 건축인 중 일부는 실무수련을 인정받아 건축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다른 일부는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건축사 양성 체계는 한 가지 경로만을 인정하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계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빈부와 성별에 관계없이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여러 경로를 통한 진입이 가능한 형평성 있고 유연한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건축사 양성 제도는 건축학사 3년 + 실무 1년(공무원부터 건설회사까지 관련 업계 실무 허용) + 건축전문석사 2년 + 전문 실무(Professional Experience and Development Record, RIBA PEDR)를 거쳐 건축사 시험(짧은 강의와 시험)을 치르는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의 교육 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별도로 운영하는 기초 과정을 국내 대학 1학년과 같이 인정해 대학이 3년 과정이다. 대학에서 교양 교육 없이 바로 전공 교육부터 이수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국내의 4년제 학위 과정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있다. 유럽의 전문대는 2년제, 대학은 3년제이다. 즉, 영국에서의 건축사 양성은 학부에서의 적성 파악, 대학원에서의 전문 교육, 그리고 건축사사무소에서의 전문 실무 등의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 건축사 시험 및 등록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건축사등록원(Architects Registration Board, ARB)은 고비용에 따른 접근성 부족과 형평성·다양성 문제를 인식하고, 2020년부터 설문조사와 공청회 등을 거쳐 2023년에 건축학사 3년 과정을 무전공으로 변경하고 이후의 과정은 건축전문석사 2년과 전문실무 1년으로 체계를 개편했다. 2027년부터는 대학, 학과, 실무 내용 조건 없이 Academic outcome과 Practice outcome으로 이루어진 49개 기준을 테스트하고 인터뷰를 통과해야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건축사 양성 체계는 개정안에 대한 설문에서 전체 65%의 찬성을 얻어 202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교육 모델은 보건 의료 계열에서 적용되는 밀러의 피라미드(Miller’s Pyramid) 평가를 바탕으로, 알고(know) 적용하는(know how) 단계보다는 응용(show how)하고 실제 행하는(does) 단계를 중시하고자 함이다.

미국의 건축사 양성 제도는 주마다 건축사에 대한 배경과 수요 등을 반영해 서로 다른 양성 체계를 두고 있다.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17개 주에서는 교육을 실무경력 또는 실무수련으로 대체해 인정하고 있다. 단, 해당 주에서 4년제 졸업자가 인증 제도를 운용하는 다른 주로 넘어가서 건축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려면 인증받은 학위(건축학 학사 및 대학원)를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의 실무 경력을 교육을 대체하는 실무수련 기간으로 인정해 청년 건축인의 고용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뉴욕주의 건축사 양성 제도는 12점 만점의 점수제로 건축사 시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전문학사 5년(9점) + 실무수련 3년(Architectural Experience Program, AXP, 3점) = 12점, 건축학사 4년(8점) + 실무수련 4년(4점) = 12점, 전문대학사 2년(5점) + 실무수련 7년(7점) = 12점 등으로 실무수련 기간을 통한 교육 대체를 인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는 전문학사 5년 + 실무수련(AXP, 3년), 건축학사 4년 + 1년 실무(교육 대체) + 실무수련(AXP, 3년), 전문대학 2년 + 3년 실무(교육 대체) + 실무수련(AXP, 3년) 등과 같이 실무를 통한 교육 대체를 인정하고 있으며, ARE 건축사 시험과 캘리포니아주 건축사 시험 이전에 실무수련이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경로를 제공하고 있다.

주별 자격 상호인정에 대해서는, 미국건축사등록원(National Council of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s, NCARB)은 전문학사 5년 + 실무수련 3년(AXP) 또는 전문석사 2~3년 + 실무수련 3년(AXP)을 거쳐 건축사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등록 건축사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 기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NCARB Education Standard를 제시하고, 개인 이력 평가를 통해 보충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한편, NCARB는 2023년 면허 취득까지 걸리는 긴 기간과 형평성 및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F 팀을 운영했다. 이 팀은 5년제 전문학사뿐만 아니라 4년제와 2년제 전문대학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 경로를 실무 경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인정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 경로 체계를 개발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NCARB의 자료조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이미 등록된 건축사의 15%인 18,000여 명이 다른 경로로 면허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NCARB는 실무 경력으로 교육을 대체하는 것을 인정하되, 그 실무 경력을 보다 엄격하게 체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건축학교육인증원(National Architectural Accrediting Board, NAAB) 인증 학위 외에도 다양한 관점과 탁월한 재능을 수용하기 위한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건축문화는 그 나라 건축사들이 살아온 다양한 배경과 환경에 의해 형성되며, 건축사 양성의 바탕에는 대학교육과 실무수련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학문 분야 및 실무수련을 통한 건축사 양성 경로의 모색은 미래의 건축사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청년 건축인들의 다양한 배경을 수용해 형평성과 유연성이 있는 건축사 양성 제도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4년제 건축학과 및 전문대학 졸업자에 대한 건축사 시험 응시 허용 방안, 실무수련을 보다 체계화하고 강화하는 방안, 실무경력으로 교육을 대체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색은 영국의 ARB, 미국의 NCARB처럼 우리나라 건축사등록원뿐만 아니라 건축사협회도 관련 기관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청년 건축인과 미래 건축사가 활동할 수 있는 유연하고 건강한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건축사협회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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