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년은 버티시게나

2024-06-26     박승진 건축사‧기역니은건축사사무소
박승진 건축사‧기역니은건축사사무소(사진=박승진 건축사)

건축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힘든 결정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응원과 축하, 그리고 조언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은 “3년은 버텨보아라”는 말이었다. '3년'이라는 기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본다.

야생으로 뛰어든 신진 건축사에게 주목받을 만한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어렵게 성사된 미팅에서 합당한 대가를 제시하면 프로젝트가 무산되기 일쑤이고,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한 설계공모에서 단번에 당선되기란 더욱 어렵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도를 거치며 시장에서 통할 만한 대가 기준을 스스로 정립하게 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 간다. 탈락과 입상을 오가며 수많은 설계 공모전에 도전하면서 제출물에 대한 노하우가 조금씩 쌓이고, 내가 경쟁력이 있을 공모전을 판별할 수 있는 눈도 생긴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다.

많은 페이퍼 프로젝트들이 쌓이면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지만, 실제로 구현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건축주들이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견뎌야 하는 아쉬움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고된 과정을 거쳐, 혹은 우연찮은 기회로 힘들게 수주한 프로젝트라도 설계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겨우 얻어낸 기회는 대가조차 열악할 수 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내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설계를 마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시공 과정을 거쳐야 실제 구현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시행착오의 시간, 힘들게 얻어낸 기회를 통해 계획하는 시간, 그리고 그것이 구현되는 시간을 돌이켜보았을 때, ‘3년’이라는 시간은 이러한 긴 과정을 통해 나름의 방식을 구축하고 실제 구현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년 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진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 지인에게 ‘3년’의 의미를 되물었다. 살아남기 위해 주말 없이 하루 8~9시간씩 3년을 보내면 1만 시간이 된다. 이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투자해 봐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3년의 시간을 보낸 사무소들은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고들 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선배들도 라면만 먹던 ‘첫 시즌’이 있었다고들 한다. 그리고 지난한 3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펼쳐질 다음 ‘시즌’이 다가올 것이다. 앞서 걸어가고 계신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신진 건축사들과 용기를 내고자 하는 후배들이 함께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