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과의 소통

2013-06-16     조인경 큐레이터/갤러리 두인

올해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자 조선조 문화 르네상스 시기였던 18세기 영․정조대에 예술인들의 중심에 섰던 표암 강세황(1713∼1791)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큰 전시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싶다.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도 바그너, 베르디 탄생 200주년 행사로 떠들썩한 가운데, 우리 선조 예술가를 기념하는 행사도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기뻤다. 그 중 하나가 간송미술관에서 이미 전시를 마친 ‘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5월 1일2∼26일)이었고, 다른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곧 열리는 ‘강세황: 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6월 25일∼8월 25일) 전시이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5월 중순, 화창한 봄날, 들뜬 마음으로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봄, 가을로 일 년에 두 차례, 딱 2주씩만 오픈 하면서도 일일 관람객수 만 명을 기록하기도 한 간송미술관에서는 미술관이 소장한 강세황의 작품 18점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다시금 저의 무지함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우리의 옛 그림들은 대부분 시화일률(詩畫一律), 즉 그림 속에 시나 글이 함께 있는데, 그림그린이의 깊은 사유를 통해 쓰여진 한시나 인용문의 의미를 이해해야 비로소 그림에 더욱 공감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하지만 저의 한자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얄팍하여 그저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요. ‘그림 위에 글씨가 멋지게 써있군’ 하는 수준이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림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해학과 은유를 지닌 한시문들을 무시하고 그림만 보려니 그저 무덤덤할 수밖에 없었다.

널리 알려진 강세황의 자화상을 볼까? 근엄하고 꼬장꼬장한 모습이지만 좌우 빼곡히 써 있는 찬문(贊文)을 공부하고 보니 그 해학적이고 유려한 문장력과 성품에 미소를 짓게 된다.

“저 사람이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머리에는 사모 쓰고 몸엔 평복을 걸쳤구나/ 오라, 마음은 시골에 가 있으되 이름이 벼슬아치 명부에 걸린 게라/ 가슴엔 수 천 권 책을 읽은 학문 품었고, 감춘 손엔 태산을 뒤흔들 서예 솜씨 들었건만/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내 재미 삼아 한번 그려봤을 뿐/ 노인네 나이 일흔이요, 노인네 호(號)는 노죽(露竹)인데/ 자기 초상 제가 그리고 그 찬문도 제 지었으니/ 이 해는 임인년이라.”

어떤가. 70세 연세에 이런 위트라니…..

한 폭의 옛 그림은 인문학의 결정체이며, 화가의 마음과 사상이 그대로 녹아든 사유의 집대성이거늘, 우리는 우리 옛 그림을 보면서 언어가 걸림돌이 되어 이런 재미를 거의 못 느끼고 있다. 한자를 배운 세대인 우리도 이럴진대, 우리 후손들은 우리의 옛 그림에 다가가지 못하고 더욱 단절될 것을 생각하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느껴진다.

6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는 제목이 지닌 의미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 적혀있는 시나 문장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어, 관람객의 공감을 높여주는 친절한 전시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