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건축이 사라지고 보이는 것들
<준공 촬영> 설계감리로 참여했던 유치원이 완공되고 공간을 기록하기 위해 몇 차례 방문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입구에서부터 빛이 들어오는 천창을 향해 공간을 훑으며 줌인하며 찍었다. 결과물 확인차 화면을 들여다보니 촬영 중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콩콩 뛰기, 구르기, 머리부터 미끄럼틀 내려오기, 트램펄린 점프, 빙글빙글 돌기 등이 선명히 보였다. 아니, 아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공간을 잘 보여주기 위해 찍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참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을 바라보다 얼굴에 햇살이 들기에 눈을 감았더니 이제는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쿵쾅대는 소리, 철퍼덕 소리, 아빠 엄마 외치는 소리,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고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해지는 다른 감각을 통해 공간을 느끼고 내가 어디 어떤 공간에 있는지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내 손끝에 닿아 있는 듯한 빛과 공간의 질감, 아이들의 움직임, 건축이 왜 제3의 피부라고 하는지 알게 하는 경험이었다.
<건축사의 초심> 영주 유치원을 설계할 때의 일이다. 전 교인을 상대로 신축하는 유치원과 비전센터의 설계개념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의 토대 위에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비전센터와 미래 세대를 양육하는 유치원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때 준비해 간 것이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였다.
<인고의 과정> 우여곡절 끝에 설계 원안이 아닌 다른 안으로 결정됐다. 예산 이슈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시공사를 선정하고 착공 이후 감리 과정에서도 시공 품질 관련된 문제가 많았다. 남다른 애정과 꿈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공정이 진행될수록 도면과 다른 디테일 시공, 예산에 의한 변경을 거치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시공사와 싸우기도 하고 교회 건축 관계들과 수많은 회의를 하는 동안 함께 설계한 건축사와 수없이 넋두리를 해야 했다.
더 높은 완성도를 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현실 가능하지 않은 최저 공사비를 제안한 시공사를 선택한 교회를 원망하기도 했다. 결국 추가공사비가 발생하고 당초 적정선의 공사비라고 생각했던 금액이 들게 되었다. 완공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게 될 정도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았던 터라 잘된 부분보다 미흡한 부분이 더 크게 보였고 아쉬운 마음 달랠 길 없이 준공식을 마치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