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인가?
필자가 건축사사무소 개소를 한 건 2019년 초. 개업하고 자그마한 일을 몇 개 하다 보니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뉴스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나올 때, 딸아이가 태어났다. 너무도 초조했고 앞날은 불투명했다. 뭘 해서 먹고사냐가 내 관심사의 1번이었고, 무작정 설계공모에 눈을 돌렸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4개의 설계공모에 참가했다. 광탈의 연속이었던 난 차츰 순위권 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자그마한 공모에서 당선이 되어 내가 처음부터 기획한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감격을 한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 건강에 적신호가 찾아왔고 큰 탈 없이 잘 넘겼지만 난 한번 불타고 하얗게 남은 숯이 되었다. 예전의 열의(혹은 간절함)는 찾아볼 수 없고 생활 속 작은 불씨 하나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사는 기분이다. 난 이 위기 아닌 위기의 타계책을 인생 선배 아버지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와 다닐 때면 “저거 아빠가 한 건물이야”라고 슬쩍슬쩍 얘기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학교 건물일 때도 있었고, 작은 목욕탕이었던 적도 있었다. 당연히 어렸을 때의 난 “아 그렇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디 큰 건설사의 사장님이 아니다. 한평생 건축업의 한 분야에서 종사하신 분이다. 어렸을 땐 자그마한 석재회사에서 그 무거운 돌을 가공하셨고, IMF의 폭풍을 제대로 맞았을 땐 건설일용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사장에서 일하셨으며, 그 후 도장업체에서 20년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고 계신다. 환갑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는 함께 할 때면 여전히 “저 건물 아빠가 한 거야”라고 하시곤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참여하신 부분은 그 건물의 일부 공종이었지만, 그 힘든 시간 동안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해 준 일 자체가 당신의 자부심이었고, 그것을 연료로 그 결과물 하나하나에 열과 성을 다해서 임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때때로 ‘나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운이 좋게도, 건축사는 건축물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 작은 성의 하나가 건물의 질을 좌지우지하기에, 결과물은 곧 내 자부심으로 쌓일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돈 버는 수단으로만 직업을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한다.
아이를 태우고 돌아다니며 “저거 아빠가 한 거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되고자 한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