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비오는 날
2024-05-10 함성호 시인
비오는 날
- 양성우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 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 그리고
이름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 양성우 시화집 ‘길에서 시를 줍다’ 중에서/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궂은비가 오는 날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생각을 시인은 적고 있다. 그러나 나비와 잠자리, 풍뎅이들이 어떻게 그 비를 견디는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둥지 없는 새들은 그 동그란 머리로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졸고 있었다. 머리의 짧은 깃털에 고인 비가 뚝, 뚝 흘러 눈가를 두드릴 때 가끔 새는 힘들게 그 구슬 같은 눈을 뜨기도 했다. 그뿐, 그칠 줄 모르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가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끝난 사랑을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