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사’ 앞세우는 발주처 입장에 국내 건축사사무소 들러리 전락, 이대로 괜찮나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국내 건축사사무소의 참여 기회 보장하고 역량 키울 환경 마련해야” 공공건축 설계공모에서 지명공모에 대한 우려 입장 곳곳서 터져 나와

2024-04-26     박관희 기자

부산광역시에서 민간 주도 건축 디자인 제안 제도 중 하나인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 대상지 공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해당 지자체에서 목표하는 ‘세계적인 건축사의 기획업무를 통한 혁신적인 건축물 건립 계획’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초 건축업계에 따르면 해당 지자체는 ‘세계적인 건축사’의 건축디자인이 도심에서 현실화하도록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각종 건축규제의 완화·배제 ▲기획업무비 일부 지원 ▲절차 간소화 등의 행정적 지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건축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이 국내 건축사들이 이들과 협업할 경우 창의적인 설계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떠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시가 해외 유명 건축사사무소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건축사사무소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거나 이들을 단순히 들러리로 세우는 것과 다름없다”며 “건축업계에 만연한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건축프로젝트 설계시장은 외국 설계업체들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과 유럽 건축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 설계공모가 쏟아지는 국내 건축시장은 글로벌 건축사사무소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내 대다수 건축사사무소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수주를 위해 외국의 유명 건축사사무소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익명의 A 건축사는 “해외 유명 건축사사무소와 협업하는 경우, 국내 건축사사무소가 실시설계를 맡게 되지만, 실제 작업은 국내에서 이루어지면서 해외 건축사사무소의 이름만 마케팅 차원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본질적 가치보다 겉모습만 화려한 ‘속빈 강정’과 같다”고 비판했다.

한편, 부산광역시는 ‘세계적인 건축사’를 민간사업자가 ‘국내외 건축사’중에서 선정하거나 보조사업자가 구성한 인력풀에서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가 보조사업자에게 인력풀에 대한 확인을 요청한 바 있으나, 4월 23일 현재까지 회신이 없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발주처들이 공정한 경쟁을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 선호되는 ‘지명공모’ 방식의 활성화로 인해 국내 업체에게 참여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B 건축사는 “소규모 설계공모뿐만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국내 건축사사무소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국내 건축사사무소들이 역량을 키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