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축사가 건축을 하도록 가만두지 않는 환경과 규제
많은 건축사들이 학생 때 설계 수업을 받으며 ‘콘셉트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들으며 개념을 설정하고 생각을 발전시켜나갔을 것이다. ‘콘셉트’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설계의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설계 수업에서는 현실적인 제약 조건을 기본적으로 반영하도록 교육받지만, 건축적인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잘 구현하도록 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학생들의 창의성이 설계 과제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때는 설계자가 설계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공공건축물이 설계공모를 거쳐 당선된 시점의 당선안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법규를 준수하는 동시에 설계자의 의도가 잘 표현된 상태이다. 하지만 공사가 완공된 시점의 완성된 건축물은 설계자의 의도가 깎이고 잘라내져서 당선안의 모습과 다소 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다양한 심의와 인증제도, 예산 규모에 따라 적정성 검토, 인허가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돼 설계안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된다.
설계자의 의도는 예산 범위 내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고된 과정을 거치게 되며, 오랜 시간 고민한 설계자보다 단시간 살펴본 전문가들의 의견을 위주로 설계안이 다듬어지고 있다. 이러한 심의와 인증과정이 설계자의 의도가 충실히 구현된 건축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심의마다 반복적인 의견을 제출하거나 심지어 위원으로서 지적하고 의견을 내는 것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규제에서 불필요하고 과도한 부분을 덜어내는 것이 건축사가 건축하는데 필요한 첫 번째 과제일 수 있다.
건축사의 업무 중 대가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 영역은 다른 전문가 단체에서 자신들도 하겠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없다. 건축사의 업무로 정해져 있는 것 중에서, 반대로 적정한 대가가 책정되어 있다고 보이는 업무는 끊임없이 업역을 침탈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업역 침탈 시도에 대해 건축사들이 함께 대응하는 것도 필요한 과제이다.
건축사가 건축하는데 필요한 마지막 과제는 건축사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민간대가의 기준이 정해진 후 이것이 빠르게 정착하고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의 목적은 더 많은 이윤추구보다, 국민이 더 안전하고 아름다운 건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도 규제가 있고, 다른 전문 분야에서도 업무 대가에 관한 문제가 존재하지만, 건축 분야는 특히 열악한 상황이다. 이 과제들은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모든 건축사가 당사자로서 개선 의지를 가지고 동참하여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