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시대의 변화, 건축사라는 직업
일을 하다 보면 ‘건축사가 의사·변호사보다 좋은 직업’이라고 얘기해 주셨던 분이 가끔 생각난다. 그에 따르면 의사는 아픈 사람이 찾아오고, 변호사는 화난 사람이 찾아오지만, 건축사는 누군가의 꿈을 실현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건축사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직업이다. 보통의 경우 건축주, 공무원, 협력업체 담당자를 만나고, 감리자 역할의 경우 공사 관계자, 민원인도 만난다. 그런차에 하루에 회의가 3건 이상 있는 날이면,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어 퇴근 후에도 머릿속이 비워지지 않는다.
문득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건축사만큼 다재다능한 사람들도 없다. 설계는 물론이요, 발표와 설득에 능하고 예술적인 감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갖추었으니,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건축사란 직업은 다재다능함을 무기 삼아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른 경험과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직업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빛의 속도처럼 빠른 시대 변화를 보면 건축사가 쉽지 않은 직업임을 깨우치곤 한다. 건축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개정되는 관련 법을 챙겨야 하며, 기술의 발달 또한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공법(工法)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건축주의 눈높이를 상향 평준화 시켰으며, 새롭게 등장한 챗(Chat) GPT는 앞으로 건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필자는 폭넓은 시야를 가진 건축사인지 생각하게 된다. 과연 어디까지 봐야 하고,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다.
내 손을 거쳐간 많은 건물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유지관리 측면에서 생명력을 가지는 건물이 맞는가 ▲개발이라는 긴 흐름 속에서 인허가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취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디자인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 많아진다.
아울러 나는 누군가에게 전문가의 모습이었을지, 안내자의 모습이었을지 뒤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는 건축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매일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