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건섭 건축사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한 우리 시대의 고민을 담았습니다"

20년만의 리마스터링 에디션 ‘건축의 무빙’ 재출간 근대 건축의 잊힌 인물의 이면 탐색하는 저서도 준비 중

2023-11-01     조아라 기자

2004년 출간됐던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20여년 만에 리마스터링 에디션을 선보인다. 데이터 유실로 안타깝게도 절판됐던 책이 새로운 제목과 디자인, 현재에 맞춰 개정된 내용을 더해 최근 재출간됐다. ‘건축의 무빙’이라는 제목으로 리마스터링 버전을 낸 이건섭 건축사를 만나 봤다.

이건섭 건축사(사진=이건섭 건축사)

"뮤지션이 리마스터링 앨범을 발매하는 것처럼 기존 내용을 보강하고, 현재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보자는 콘셉트로 시작했습니다. 개정판인 만큼 ‘건축의 무빙’은 2004년부터 2023년 사이의 건축계 이야기를 추가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펜데믹입니다.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이 도시와 건축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는지, 도시가 전염병을 더 확산시키는 게 아닌지 등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여성입니다. 건축계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형 설계 사무소만 보더라도 여전히 유리천장이 공고합니다.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해 이 두 가지는 지금의 우리가 꼭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라고 봤습니다.”

'건축의 무빙’을 관통하는 주제는 지속가능한 건축이다. 이건섭 건축 사가 지속가능(Sustainable)에 집중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덴마크 아키텍트인 비이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건축학과 학생들과 젊은 건축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더라고요. 왜 인기가 좋은지를 살펴보니까 지속가능한 건축을 만들어가는 아키텍트 같았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어떤 주장이라도 전부 포용하는 예스맨인 동시에 본인의 지향점을 관통시키기 위한 유동성을 보이는 거죠. 그런 아키텍트의 등장과 그에 대한 선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해 필요한 건 ‘사유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전작부터 일관되게 추구해 온 가치이기도 하다.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사를 비롯해 건축사가 아닌 인물도 빼놓지 않는다. 공학적인 건축적 사고를 벗어나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건축사에게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가 근대 건축의 잊힌 인물들의 이면을 탐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르가레테 리호츠키(Margarete Schütte-Lihotzky)를 다룬 책을 준비 중입니다. 리호츠키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근대 건축이라는 복잡한 디자인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마르가레테 리호츠키(Margarete Schütte-Lihotzky)는 1920~3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로 프랑크푸르트 키친(Frankfurt kitchen)을 정립 보급했다. 프랑크 푸르트 키친은 합리적인 동선과 명료한 디자인으로 비용절감이 가능한 모델이다. 혁신적인 이 주방 시스템은 1920년대 말 프랑크푸르트에 건설된 공공주택에 8천 세트 가까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섭 건축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오가며 자료 조사와 취재를 진행했다.

건축의 무빙(자료=수류산방)

20세기의 대표적 건축 거장의 삶을 기록했던 이건섭 건축사가 생각 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은 누구일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를 꼽았다. 2022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한 케레는 고향인 부르키나파소에서 흔한 흙과 나무를 주재료로 삼아 학교, 도서관 등 공공 건축물을 지어 지역 사회에 헌신한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케레가 고향 간도(Gando)에 지은 초등학교는 2004년 아가 칸 건축상(Aga Khan Award for architecture)를 받았다. 아가 칸 건축상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 부르키나파소는 인구의 63%가 이슬람 신자다.

“케레의 삶의 궤적을 보면서 ‘왜 건축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케레는 아키텍트이자 사회 운동가입니다. 결핍 속에서도 치열한 고민 끝 에 모두에게 품위 있고 훌륭한 공간을 제공했죠. 더욱이 지역과 함께 이뤄나가는 건축의 중요성을 보여줬습니다. 반면 우리는 아직 좋은 건축을 할 여건이 안 된다고 생 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부유하고 미디어나 SNS만 봐도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요. 프란시스 케레는 이 시대의 모범이 되는 건축인 같습니다. 케레를 통해 우리가 어떤 건축인이 될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