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진화

2010-01-16     장양순 건축사

건축에도 일가견을 가졌기에 당시로는 쉽지 않았던 미국의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 대한교육보험사옥을 세종로 한 복판에 큼직하게 건축한 신용호 회장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금싸라기 같은 지하층 전체에 서점을 만들었다. 그는 ‘교육보험’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부를 이룬 연고도 있으나 책에 대한 열정과 독서량이 대단했는바, 윈스턴 처칠의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란 말이 연상되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일찍이 당나라의 두보는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남아수독오거서)고 설파했고,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마을의 도서관이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했다.

서양의 경우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의존했고 동양에서는 죽간이나 목간을 이용하여 책을 만들었던 시대는 채륜의 종이 발명과 함께 목판본을 거쳐 금속활자와 인쇄술의 발달로 가히 오늘날과 같은 혁명을 이루었다. 또한 컴퓨터는 제2의 조판과 제판 혁명을 가져왔다.

불국사 석탑의 다라니경은 목판본으로, 직지심체요결은 금속활자본으로 현존 최고의 인쇄물이다. 세계 최고의 한지와 함께 이렇듯 최고의 인쇄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함대는 강화도를 점령한 후 외규장각도서를 훔쳐갔는데, 정교한 장정과 화려한 의궤의 칼라를 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또한 그들은 초가삼간에도 책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나라에서 귀족 외에 국민개교육을 시작한 것이 1850년이고 보면 1866년의 병사들은 대체적으로 문맹자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독서가의 연초 화두는 세종시가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의 전자 쇼이다. 아이폰이나 구글폰이 전자책 기능 등 풍부한 소프트웨어로 기술의 삼성폰보다 인기가 높다는 것과 함께, 아마존의 킨들이나 반즈앤노블의 누크가 10만권을 수록한 전자책(e-Book)을 미국에서만 1,000만대 이상 판매할 것이란 뉴스이다. 우리도 금년 안에 전자북 시대가 시작된다는데, 장기 여행 시 무게와 부피 때문에 어려웠던 독서가 즐거울 것인가. 생각만 하여도 신나는 일이다.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과 사귀라.-데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