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현모 건축사 “협회의 정책과 실행방향이 건축사와 함께 줄탁동시 하길”
I AM KIRA 신입 회원에게 듣는다 - 양현모 건축사(충청북도건축사회)
신진건축사들은 꿈이자 목표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협회 가입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졸업, 실무수련, 수험생 생활, 그리고 창업까지 모두가 쉽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고,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입회원에게 듣는다’는 긴 노력의 시간 끝에, 사무소 개소에 성공한 건축사들을 만나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삶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창업기 등 동료이자 선후배가 될 이들을 조명함으로써 활력 넘치는 업계, 소속감과 연대의 가치를 공고히 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편집자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건축사입니다.” 충청북도건축사회 소속 양현모 건축사(건축사사무소 기억공간)는 업계 입문기에 대해 ‘삶의 즐거움’, ‘행복한 인생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16년이라는 공기업 생활을 정리하면서 선택한 건축사의 삶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본지에서 양현모 건축사의 일상을 들여다 봤다.
Q. 건축사사무소 개소 소감과 개소에 따른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16년간 다니던 공기업의 퇴사를 결정하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이유는 남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파란 하늘이 주인공인데요. 출근하면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차를 세우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싶은데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에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결정되는데로 사는 삶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고, 결국 대학시절 즐거웠던 설계를 하고 싶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것이죠. 그렇게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안정적인 급여를 받던 상황에서 몇달 뒤 운영을 고민해야 하는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현실이지만, 사무실에서 넓게 트인 창밖으로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래, 참 잘한 선택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현재는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퇴근하는 날이 전에 비해 훨씬 많아지긴 했습니다. (웃음)
Q. 건축사로서 어떤 꿈과 비전이 있는지, 또 8월 4일 의무가입을 완성을 기점으로 건축사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간은 기억을 남긴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설계한 공간에서 건축주가 어떤 기억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건축사사무소의 로고를 제작할 때 기억공간의 초성을 따서 ‘ㄱㅇㄱㄱ’으로 정한 것도 ‘ㄱ’들 사이에 ‘ㅇ’의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이 만들어가는 환경은 사람에 영향을 미치고, 삶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건축사로서 건축주의 많은 이야기를 공간에 담아내어 공간의 기억이 행복한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부리로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답니다.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탄생 과정입니다. 이 ‘줄탁’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의무가입이 대한건축사신문 한면을 가득 채울만큼 성대히 시작됐고, 이제 모두의 건축사협회가 되었습니다. 또 의무가입은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부리로 깨듯 분열되었던 건축사의 껍질을 깨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줄탁동시가 되려면 건축사협회에서 건축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방법에 대해 치밀하고 전략적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기가 중요하듯 의무가입 이후 협회의 정책과 실행방향이 실망스럽다면 껍질은 깨지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고민하며, 더 많이 노력하는 협회로 거듭나야만 지금까지의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나는 건축사, 건축사협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실제 업계에 몸담으면서 느낀 애로사항이나 건축사 업무 시 불편사항 등 제도적 개선점을 제시한다면?
개소를 하면서 신입회원이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매뉴얼 부재가 아닐까 합니다. 사업자등록, 나라장터 입찰, 업무대행 신청, 세움터 업무처리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요. 이런 어려움을 접할 때 인터넷상이지만 방법을 제시해준 고마운 건축사 동료, 또 지역 건축사 선배님들을 통해 하나하나 배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한번 해보면 쉬운 일일 수는 있지만, 처음 접하는 신입들에게는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협회차원에서 신입회원들을 위한 필요한 절차가 담긴 동영상 또는 매뉴얼 책자가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가 기준 확립과 무료 기획업무 근절 등은 건축사 회원들이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반면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건축사 카페에서는 복합자재 관련 법령해석과 기준 부재로 일선 건축사들이 혼란을 겪는 일들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기준정립과 신속한 법령해석이 이뤄진다면 협회에 대한 신뢰가 보다 굳건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선·후배,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해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해 격려해준 선배 건축사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선배는 두 가지를 물어왔는데 첫번째 질문은 ‘앞으로 건축사가 될 것인지 사업가가 될 것인지’였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건축사가 되겠노라’라고 망설임 없이 답변했는데, 지나고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업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향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건축사의 삶에 더 주목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왜 이렇게 추운 겨울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사실 다니던 공기업에 4년만 더 근무했더라면 20년 근속 명예퇴직도 가능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아주심기’를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아주심기’는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양파는 씨앗을 땅에 바로 뿌리지 않고, 트레이에서 모종을 기른 후 10월, 수확할 때까지 자랄 땅에 ‘아주심기’를 하게 됩니다. ‘아주심기’한 양파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자라는데요. 그렇게 겨울 한파를 이겨낸 양파가 더욱 달고 맛있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추운 겨울이지만, 저는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건축사로서 아주심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건축사 업계도 어려운 현실에 서로 반목하지 말고, 동료의식을 가지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그렇게 함께 힘든 시기를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