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어찌 나 만의 일인가?
며칠 있으면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국민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힘들다고들 한다. 우리 건축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부동산 경기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는 기사도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더불어 건축 경기도 활성화되어 우리 건축사도 바빠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해 5월 오랜만에 전자입찰을 통해 모 국립대학교의 리모델링 설계용역(사업비 17억 여 원, 설계비 4100여 만 원, 용역기간 40일)을 낙찰 받아 일을 한 적이 있다.
용역 수행 중 업무량 및 사업비가 상당히 증가 될 것으로 예상되어 도저히 40일 이라는 기간으로는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용역비와 용역기간을 조정하여 줄 것을 건의하였으나 일단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일이 채 50%도 완성되기 전에 납품일이 다가왔다. 계약조건과 지체로 인한 불이익이 걱정되어 계약사항을 조정하여 줄 것을 다시 요청하였으나, 연장은 안 되고 일단 납품서만 제출하고 계속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휴일도 없이 야근을 하며 일한 결과, 20여일 후 용역이 완성되어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사업비가 36억 여 원으로 늘어나 업무량이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외주비 또한 두 배나 청구되었으나 발주처에서는 “당초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딴소리냐”는 식으로 요지부동이었다.
납품도서를 제출 하는 날 내용증명으로 계약금액 조정요청서를 발송했다. 그랬더니 시설과 직원 두 명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려고 그러느냐? 다음에 다른 용역도 있고 하니까 요청을 철회해 달라고 협박 반, 설득 반 이었다. 하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이고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아 거부했다. 결국 나의 요청은 묵살되고 “설계용역 과업지시서”의 조항에 의거 조정이 불가하다는 통보가 왔다. 도저히 억울하고 용납이 안 되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지라도 못된 관행을 고쳐서 차후 나와 같이 억울하게 당하는 건축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단히 마음먹고 관련법을 찾아서 공부를 하며 진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과업지시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본 과업 수행 중 다음사항에 변동이 있을 때에는 실제에 맞추어 예산의 범위 내에서 변경 또는 정산할 수 있다.” 라고 해놓고, “다음 항목에는 『계약자는 ........ 설계용역비 증가사유가 발생되더라도 증액분에 대한 설계비는 청구할 수 없으며, 또한, ....... 설계용역비 감액사유가 발생되면 설계용역 계약금액은 감한다.』”라는 독소 조항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계약의 원칙)를 위반한 불법 부당한 조항이다. 법을 무시한 과업지침으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국가를 믿고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사실을 정리하여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권익위원회는 수차에 걸친 사실 확인과 조사를 하였고, 발주처에서 끝까지 억지 주장을 하는 바람에 결국 양 당사자들의 주장을 청취하는 현장방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권익위에서 나의 주장을 인정하여 발주처에 계약금액의 조정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건축사의 업무 대가기준에 의거 당초 설계비의 2배 이상 청구 했지만 책정된 설계비 예산이 5200만원 뿐 이라고 하여,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합의의 형태로 그 금액으로 일단락 지었다. 진정서를 제출한 후 90일만의 결과였다.
혼자 하기에는 꽤나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고 관청의 용역을 해본 건축사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겪었을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들이 하지 못했던 싸움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일방적으로 당하지 말고 건축사간에 이런 정보들을 공유하여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대한건축사협회는 부당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협회 내 회원권익보호위원회 등을 통해 협회 차원의 강도 높은 대응을 하여 다시는 나처럼 외로운 싸움을 하는 회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