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대지진, 부실·불법건축으로 피해 키워…‘국내 건축물 품질 확인제’ 도입해 건축안전 반면교사 삼아야

FOCUS 튀르키예 대지진과 건축물 안전, 그리고 건축사의 역할 10만5,794채의 건물 파괴, 인명피해도 4만 명 넘어서 최근 부실시공 책임, 튀르키예 내 건설업자 100명 체포 건축물 거래 시 노후도, 실내마감상태, 위법여부 등 건축사가 확인해 국민·소비자 ‘건축물 정보’ 손쉽게 알 수 있게 해야

2023-02-22     박관희 기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하테이 주 지진 잔해 속에서 사람들이 구조에 나서고 있다. (사진=shutterstock)

2월 6일 튀르키예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2월 19일(현지시간) 까지 6,000번이 넘는 여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4만 명, 유누스 세제르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 국장은 이날까지 튀르키예에서만 총 4만689명이 지진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피해도 크다. 튀르키예 정부에 따르면 10만5,794개의 건물이 파괴됐거나 해체가 필요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됐다. 이들 중 2만662개는 완전히 붕괴됐다. 붕괴 건물 중 대부분이 주거용 건물이라는 점이 인명피해가 확산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튀르키예 정부 역시 주거용 건물 붕괴의 원인이 된 불법·부실공사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튀르키예 법무부는 지진 피해를 입은 10개 주 당국에 ‘지진 범죄 수사대’를 설치하라고 지시하고, 불법 및 부실공사 책임이 있는 건설업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 결과 최근 지진 피해 지역 10개 주에서 건설업자 100여 명이 부실공사 혐의로 체포됐다.

불법 건축으로 피해가 확대된 튀르키예 지진을 반면교사 삼아 국내에서도 건축물의 소유자나 건물관리자가 건축물의 품질과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건축물 품질확인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건축물의 생성부터 멸실까지 전 과정에서 품질·안전에 책임을 지는 건축사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건축물 거래 시 건축물의 상태와 상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언이다. 불법 건축 유무를 확인하고, 건축물의 정보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는 민간전문가로는 건축사가 유일하다.

서울시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A 건축사는 “국민들이 건축물에 대한 정보 이를테면 각종 설비 노후도라든가 실내마감상태, 위법여부 등 건축사가 체크리스트로 확인해 건축물 거래시 첨부케 한다면 국민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고, 준공 후 유지관리 과정에서 규정을 준수하려는 노력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지진에 앞서 튀르키예는 1만7,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이 1999년 있었는데, 이때 내진을 포함한 건축규제를 강화했으며, 2018년에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의 건축물에 고품질 콘크리트를 쓰고 철근으로 보강하도록 했다. 하지만 건설업자들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저급 콘크리트와 철근을 사용해 규제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반면, 불법 건축을 줄여 같은 지진으로부터 단 한명의 사망자도,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은 지역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튀르키예 하타이주 북쪽에 있는 인구 4만2,000명의 도시 에르진이다. 가장 피해가 큰 하타이주에 속한 에르진은 시 당국이 불법 건축을 강력하게 단속해 피해를 막은 것으로 분석됐다. 터키 지역 언론과 외신을 종합하면 외케슈 엘마솔루 에르진 시장은 그동안 불법건축물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고강도 건축규제 덕분에 지진으로 인한 어떠한 희생자, 심지어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도 “선진국에서는 주택 매매과정에서 주택의 내구성이라든가, 설비 노후도, 주택의 위법성 등을 알 수 있게 별도의 서류가 첨부되고 있다”며 “국민들, 소비자들도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