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꿈과 현실
대학 입학 시절 선배들이 ‘넌 왜 건축과에 왔냐?’라고 열에 아홉은 의례적으로 물어봤다. 그 당시 필자는 ‘그냥 점수 맞춰서요.’ ‘아버지께서 건축사라...’라고 별 의미 없는 답변을 했었다. 건축에 입문한지 15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는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난 왜 건축을 하고 건축사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제는 별 의미 없이 넘길 수 없는 질문이 아닌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고, 답을 찾고 헤쳐 나가야만 나와 가족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질문이 됐다.
사무소를 개설한지 반년 남짓. 호기롭게 시작했고, 간간이 입찰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사무실을 운영해 나갈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일부 답을 건축사헌장에서 찾기도 했다. 첫 항목에서 ‘건축사는 조형창작 예술인으로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라고 기술돼 있다. 건축사라면 기술적인 부분은 기본이고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축사로서 좋은 건물을 만들고자 하는 꿈과는 다르게 건축설계의 현실은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고 하기에 많지 않은 설계비임에도 그 설계비마저 아까워하고, 이런 상황을 파고들어 일을 받아오는 자격대여 사무소도 있고, 일부 건축사사무소는 스스로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건축주가 제대로 된 설계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이다. 더 좋은 공간과 미적인 건축물을 생각하는 등 많은 고민이 뒤따르는 건축설계임에도 건축주들은 눈앞의 비용에만 매몰되어 있고, 설계 기간마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둘째로 건축사들 역시 적은 설계비로 소수의 프로젝트만 진행한다면 사무실 운영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허가 수준의 도면만으로 작업을 종료 해버리는 경우다. 셋째로 위와 같은 결과물에서 공사 부분에 대한 정보가 적으니 시공업체에서 시공 중 임의로 처리하는 부분이 많아져 설계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물은 예술품이 아닌 부동산 가치만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
현재 건축사협회에서 민간 대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렵게 대가기준이 만들어지더라도 건축사들 모두가 이를 지키고 박리다매를 하는 자격대여 사무소에 대한 확실한 제재가 가해져야 그 기준에 의미가 생길 것이다. 그래야 건축사들이 한 프로젝트 한 프로젝트 신중하게 접근하고 많은 고민을 하여 좋은 공간, 아름다운 건축물로 건축문화를 선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