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한 꿈

2011-12-16     곽진훈 건축사

얼마 전 고3 큰아들의 수능이 끝난 우리 집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기대하던 점수에 한참 모자라게 나온 가채점표를 확인한 순간, 본인은 물론 우리가족 모두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집안에는 며칠 동안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이후로도 한동안 우리들은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아들이 의외로 충격을 받아서 다니는 학원을 모두 그만둔 후, 한참동안 고민하더니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번 검토를 해달라고 하였고, 큰아들은 집안 분위기가 불편하여 한동안 밖에서 맴돌았다고 얼마 전에 애기를 털어놓았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일상의 분위기로 돌아와 차분해진 가운데 큰아들은 대학입학과 재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아무래도 하던 공부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곧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동안 우리가족은 스스럼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운동경기를 새벽까지 같이 보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재미있게 지내 왔으며, 주위에서도 격의 없이 지내는 우리가족을 바라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수능결과로 인하여 일시적이나마 우리가정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 사건은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하지만 행복추구를 위한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다보면, 행복을 위한 수단과 방법은 황금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가고, 어느새 수단과 방법이 인생의 갑이 되어서 스스로를 짓누르고 행복이 아닌 불행을 향해 달리게 된다. 물론 업무과정 자체를 즐기며 일할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나위 없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자녀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20여년의 시간은 행복한 시간일까? 아니면 행복을 지향하는 인내의 시간일까? 혹 유명대학과 좋은 직장만을 선망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만약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20여년이 인내의 시간이라면, 사회에 진출하여 활동하는 짧은 30여년의 시간 안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사회에 나오면 그냥 행복해 지는 것일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이제 2011년도 며칠남지 않았다. 나는 올해 제법 커다란 계획과 꿈을 꾸며 출발하였다. 그 꿈은 경제적 안정과 사무실 유지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향한 선망의 꿈이었다. 그러나 한해를 돌이켜보면 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눌려 살았고, 이로 인하여 나 자신을 보듬어 주지도 못하였고 주위를 살피지도 못한 채 고민만하다가 한해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지나가버린 올해의 꿈은 시간이 지나도 회복할 수 있는 일과 돈에 대한 선망이었다. 그러나 일과 돈에 대한 선망으로 자신과 가족들 지인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이 문구는, 모든 것은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나도 내가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혹 지금이 힘들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 순간일지라도, 이 시간은 다시는 올 수 없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지금 내 앞에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가질 수 있는 일과 돈이 있으며, 지금이 아니면 또 다른 내가 되어있을 내 자신과 사람들이 있다.

새해에는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그 꿈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꿈이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꿈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나의 내면을 다듬는 꿈이며, 외형과 크기를 추구하기보다는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꼼꼼히 매만지는 희망의 꿈이다.

*선망(羨望): 부러워하여 바람.
*희망(希望):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