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구름 속에 갇힌 “더클라우드(The Cloud)”

MVRDV의 용산 주상복합빌딩 계획안, 9·11테러 당시 WTC 연상케 해

2011-12-16     백민석 편집국장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더 논란
설계사 측 해명의 진정성 의심돼

 

지난 12월 6일 공개된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초고층 건축물 기획 설계안 중 네덜란드 건축사사무소 MVRDV가 설계한 트윈 타워형 주상복합 계획안 “더 클라우드(The Cloud)”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계획안이 2001년 9·11테러 직후 연기를 토해내는 세계무역센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MVRDV는 각각 60층(300m)과 54층(260m) 규모의 2개 동을 중간에서 연결, 그 부분을 10개 층으로 구성된 구름처럼 설계했다. 미국 전자제품 전문 블로그인 기즈모도는 지난 8일“설계회사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 디자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9·11테러 당시비행기가 건물을 향해 돌진한 직후 먼지와 건물 부스러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섬뜩하다는 지적이다.

영국 BBC와 뉴욕데일리 뉴욕포스트 등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 같은 지적을 전하며 MVRDV의 디자인에 대해 비난했다.

이어 영국 BBC 인터넷판은 1분 46초 분량의 영상 보도를 통해 개요를 설명하는 한편, 길거리 한국 시민들에게 사건에 대한 의사를 묻는 등 집중적으로 취재하며 관심을 보였다.

정작 한국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으나 외국 언론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9·11테러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미국 언론을 통해 “빌딩 설계자가 알카에다 추종자냐”, “9·11 테러 희생자를 무시한 처사”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빌딩이 들어서는 것이 유가족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디자인 논란에 대해 MVRDV 측은 “9·11 테러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설계 과정에서 유사성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일축했고 그러면서도 “설계도를 보고 마음이 상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건축사와 대중 간의 시각의 차이다. ‘설계디자이너’로서 건축사의 창의적발상과 그 발상이 가져오는 대중의 시각적 불편함,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어떻게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무쪽 자르듯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MVRDV 측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되고 있기 때문이다.

MVRDV 소속원 젠 니커가 공공연히 9·11 테러를 염두에 두었다고 독일의 한 신문을 통해 밝혔고(그는 “9·11 테러를 떠올린 건 사실이나, 그 사건과 연관을 지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MVRDV 대표 위니 마스(Winy Maas)는 지난 7일 국내 인터뷰에서 WTC 테러 이후 건축계일각에서 쌍둥이 건물을 세우는 것도, 쌍둥이 건물에 입주하는 것도 꺼리는 흐름인 ‘쌍둥이 빌딩증후군(Twin tower syndrome)의 개선(improve)’을 언급하며 ‘더클라우드’가 건축계의 ‘WTC 트라우마(Trauma)’를 완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MVRDV의 속내를 밝혔다.

한편 MVRDV는 과거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난민들을 위한 거주소를 디자인 한 바 있는데, 당시에도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휘어진 빌딩 디자인을 해 논란을 빚었으며 위니 마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거주소에 대한 사람들의 항의에 “이렇게 사람들을 자극하는 논란도 나쁘지 않다”며 “우리는 건축계의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건축주인 용산역세권개발 관계자는 ‘더 클라우드’의 디자인이 앞으로 설계디자이너의 의지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디자인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만약 수정된다고 해도 최근의 논란과는 상관없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