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금단 증상

2022-10-20     함성호 시인

금단 증상

- 김기택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점점 느려지던 버스가
아예 멈춰버리자
의자에 조용히 붙어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자는 자꾸 엉덩이를 들었다 놓고
손가락들은 목과 뒷덜미를 긁고
모가지들은 아무리 기웃거려도 
움직일 생각 없는 창밖을
연신 두리번거린다
꿈쩍도 하지 않는 버스를 움직여보려는 듯
발들이 동동 구른다
땅바닥에 굳게 붙박인 나무와 건물이
계속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모든 게 핸드폰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입들은 핸드폰에게 야단을 치고 
짜증을 퍼붓는다
속도의 단맛에 중독된 유리창이
수전증처럼 덜덜 떤다
엔진은 곧 폭발할 듯 으르렁거리지만
근질근질한 바퀴는 
터질 듯한 공기를 꾹 누르고 있다

 

- 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2

모든 소설은, 그것이 1인칭이든, 2인칭이든, 3인칭 소설이든, 다 자기고백이라는 말이 있다. 시는 말 할 것도 없다. 단지 소설이 그걸 천연덕스럽게 꾸미고 있다면 시는 노골적이다. 이것이 내 얘기라는 걸 시는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시는 1인칭이다. 서정이라는 것은 대상과 내가 어떤 시적 순간에 일치하는 것이다. 혹은 그 일치를 시적 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인은 시에서 지속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모든 사물이 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정황, 풍경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