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늦었지만 아직 젊은 건축사

2022-10-11     윤은주 건축사 · 비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윤은주 건축사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한 지 15년 되던 해, 사십춘기가 찾아왔다. 조직에서의 익명성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 실제와 드로잉 사이, 실제 내 삶과 분리된 대규모 건축행위와 그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건축에 대한 목마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이 좁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건축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모든 것은 사라지고 결국 사유만이 남는다”는 말처럼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스스로 내러티브(narrative)를 써 내려가고 싶어졌다. 지금 한국 건축계에서는 30~40대 젊은 건축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들은 사회와 시대의 흐름과 기성 질서에 도전하며 새로운 탐구와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은 한국 건축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가늠케 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아직 불완전하며 미완성이지만, 그들이 사유를 통해 구축하고자 하는 솔직하고도 진솔한 건축이야기는 때론 엉뚱하기도 하며 때론 유쾌발랄하기도 또 때론 담백하기도 하다. 무심한 듯 치열한 그들의 작업을 보며, 안전하고 단단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마흔 둘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는 어떤 태도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많은 젊은 건축사들의 시작은 도심의 다세대, 다가구 주택과 같은 소규모 필지다. 상대적으로 낮은 설계비에 50여 팀이나 참가하는 치열한 공모의 세계다. 고도성장기가 끝난 지금의 한국 사회와 자본의 투입 없이 생존하기 힘든 건축 생태계가 2020년을 사는 젊은 건축사들에게 안정적인 일감을 제공해 줄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불확실한 미래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젊은 건축사들의 독립 혹은 개업 시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또 작업의 방향을 설정한 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부딪쳐보고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건물을 지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대신 다른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아 또 다른 건축적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경험의 부재는 어느 시점에서든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때로는 이상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다. 생물학적 나이로 구분되는, 젊은 건축사라는 모호한 개념은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크고, 프로젝트의 성격, 작업의 질과 규모, 건축적 완성도와 직능의 숙련도, 사무소 운영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와 견줄만한 시각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 아닐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축계와 예측하기 힘든 시대와 파편화된 현실을 바라보는 신진 건축사들에게는 서로의 유연한 연대, 건축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협회 차원의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