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
2022-07-19 함성호 시인
어리둥절
- 이시영
강릉 사는 이태범이 사진을 보내왔는데
거기 붙은 사진 설명이 그대로 시였다.
“중정 서까래 속에 들었던 둥지에서
자란 곤출박이 새끼가
세상에 처음 나와서
어리둥절해하는 이 아침”
그가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쓸어놓은 마당도 부럽지만
추녀를 살짝 들고 날아갈 듯이 앉은
한옥 지붕이 더욱 날렵하다
- 이시영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2021
때로는 건조한 신문기사 한 줄이, 약 복용 설명서가, 가전 사용설명서가 그대로 시처럼 읽힐 때가 있다. 미술사에서도 ‘레디메이드’라는 방법이 있듯이 시에서도 그런 때가 있다. ‘시’가 아니라 ‘시적’인 상태. 1980년대에 황지우 시인은 “시적인 것은 있다”고 선언하듯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시적인 것이 시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말은 시다. 그것은 시적인 상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