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적 지위로 불공정 계약이 일상화된 건축설계

2022-07-05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건축사들의 업무대가 계약이 불공정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예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진두지휘 하는 기획재정부나 국회 또한 이해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설계를 바탕으로 시공사 입찰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데, 감리 분리 등에 따라 설계의도 구현마저 배제된 계약상황은 더 큰 문제이다. 일선에서 ‘디자인 감리’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설계의도 구현’의 의미와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담당 주무관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완벽한 설계라면 설계의도 구현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는가 하면, 이를 기술적인 감리와 혼동하기도 한다. 

유럽·일본의 설계 관행을 보더라도, 시공사 즉 건설사의 고유 권한과 그들의 실력은 건축사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경제성 있게 실현하는 능력에 있다. 그런 이유로 일본 유수의 건설사들은 주기적으로 건축 상세도를 출판하고 외부에 공지한다. 세계적인 건축잡지 A+U를 보면 종종 일본의 대형 건설사들이 그려내는 시공 상세도면들을 특집호로 출판하고 있다. 완벽한 시공은 건설사들의 설계 이해도와 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그들의 능력이 동반되어야 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우리나라 대형 건설사들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대체로 많은 인력을 배치해 설계팀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법적으로 5,000제곱미터 이상은 상세시공도면을 제시하라고 되어 있음에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모든 책임을 시공하지 않는 건축사사무소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해외와는 다른 현실이다.

건설 전문집단인 건설사가 이러한데, 비 전문집단인 공공이나 민간의 발주자들은 어떨까? 당연히 시공에 대한 모든 설계까지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요구가 대가와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뿐인가? 발주처의 사유로 일정이 지연되고, 규모가 변경되어도 설계변경에 대한 대가 지불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물가나 각종 변수에 의한 공사비 상승은 인정해도 설계분야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심지어는 공사비 연동으로 책정되는 설계대가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사비를 축소해 공고 또는 발주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계약이후 변경되고, 지체되고, 번복되는 과정에 대한 설계대가는 결코 인상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처들의 일방적 요구로 진행된다. 사업 시간의 지연과 설계대가의 연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설계 환경이다. 공공이 이러할 진데, 민간은 어떨까?

낮은 설계대가는 건축사업계 발전을 저해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우리사회 전체가 건축사를 착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