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2022-07-05     함성호 시인

공터에서

- 오은경


벌을 받는 것 또한 
스스로 자처한 일이라고 한다.

부정하거나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늘 뭐가 문제냐고 걱정하듯 묻던 
수지 대신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나는 일기를 쓴다.


 

- 오은경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 중에서/  민음사/ 2020

시는 자기 바깥의 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자기 안의 마음의 결을 다듬는 일이다. 고양이가 털을 핥듯 그렇게 배우 반복적으로 자기 안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시들, 예를 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고 그치는 시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바깥의 풍경과 자기 안의 ‘공터’가 조응하지 못하는 경우 시는 왕왕 실패한다. 자기 안의 결을 고르는 일은, 보통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에 스스로 자처한 벌 같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