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22-07-05     이상흔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디딤돌 <경상북도건축사회>
이상흔 건축사

건축은 철학과 기술적 지식이 내재된 종합적 예술 작품이라고 건축 초년생 시절에 배운 바 있다. 구조·기능·미 건축의 3대요소를 기반으로 공학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일이 건축설계의 기본이자 시작이 아닌가!
최근 중규모의 신축공장 설계 건에 참여했다. 당연히 여러 건축사사무소와 경쟁을 벌였고, 한 달여 동안 고심하며 PPT 자료를 만들어 브리핑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사업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후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들게 할 어이없는 결과통보를 접하게 된다. 설계 견적단가가 우리 사무소가 제시한 수준의 절반도 안 되는 업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가 제시한 단가는 필자가 판단하기에 아무리 계산해도 인건비는 고사하고, 운영비도 모자랄 견적이었다. 때문에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번뇌에 사로잡혀 있으며, 설계비에 대해서 우리 회원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지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싶다. 또 건축사협회에서는 이런 실정을 알고 있을까 문득 의문이 든다.

30년 전 건축사사무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무렵의 설계비와 현재의 설계비는 과연 차이가 있을까? 당시에도 설계비 인상을 위해 투쟁하던 생각이 어렴풋 떠오른다. 그 고민이 지금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지만 말이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뀐 지금, 하다못해 생필품 등의 가격도 앞 숫자가 바뀌고 인상되어 가는데, 단 하나 건축사들의 설계비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 오히려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지역별 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설계비가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업무는 기본설계부터 허가까지라는 과정이 반복되고, 비슷하지 않은가?

오래전 설계비 정착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공정거래법은 자본주의 사회의 효율성과 민주성의 기초가 되는 경쟁의 원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이다. 실제 공정거래법의 목적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기업 활동 등의 보장과 소비자보호,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면서도 지난 30년 동안 이 법을 준수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해 왔으며, 국민들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아선 안 된다. 달라져야 한다. 외적으로 협회와 건축인 모두가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될 것이다. 내적으로는 설계비의 현실화를 위해 서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며, 함께 상생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건축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건축사로 거듭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