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무한 서비스는 이제 그만…대가기준 체계 재정립해 산업경쟁력 강화
민간건축물 대가, 공공 대가 대비 20% 수준에 불과 잦은 설계 변경, 이에 수반하는 낮은 대가 등 불공정 관행 끊어야 ①설계대가 산정방식 개선(표준품셈 제정) ②설계단계별·시공단계 前 ‘설계변경’ 인정 ③설계의도구현 대가기준 개정 책임 걸맞은 대가 보장 시스템 마련해 “산업동력 확보, 인력양성 선순환 구조 구축”
대한건축사협회가 의무가입 후속조치로서 그간의 연구결과와 사례, 전문가 자문회의 의견 등을 종합해 건축사 업무대가 산정 때 기준이 되는 ▲표준품셈 제정 ▲건축설계 과정에서의 설계변경 기준 마련 ▲설계의도 구현업무 대가 산정기준 개정을 정부에 건의, 제도개선을 본격화해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건축설계업계 위기의 주요 원인에는 대가 문제가 핵심이다. 정당한 대가는 모든 산업 생태계의 가장 기본적인 자양분인데, 자양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선 지식기반이나 고부가가치라는 비전은 공허한 외침일 수밖에 없다.
협회는 의무가입 법제화 취지가 건축이 갖는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고 국민에게 보다 품질 높은 건축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국민의 재산·생명을 책임지는 건축사가 부당하게 겪는 불합리한 관습·제도를 바로잡아 공정한 평가를 받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는 만큼, 국민안전 및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확립, 바로 세우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내부적으로 이들 과제들을 올해 법제 중점추진 사항으로 삼아 역량을 집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건축사의 ‘기획업무, 건축설계업무’에 대한 표준품셈 제정으로 적정 대가 지급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선다. 현재는 업무대가 산정 시 공사비 요율 또는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하고 이마저도 공공부문에 한해 의무 시행되지만, 표준품셈이 제정되면 공공·민간 모두에 적용되는 적정대가 산정 기준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건축 인·허가 및 주택인허가대장(2015년∼2019년)에서 추출된 신축건축물 48만7,199건을 분석한 결과, 공공건축물의 대가 대비 민간건축물 대가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산업에서 가장 기본적이라 할 대가수준이 엉망인 셈이다.
산업경쟁력 제고를 촉진하는 기반을 만드는 차원에서 표준품셈은 건축설계업무 단계별(계획설계·중간설계·실시설계) 용도 및 난이도를 고려해 만들어지고, 이와 더불어 협회는 표준품셈 관리기관 선정 및 위원회 설립을 통해 물가인상 등 필요 때마다 표준품셈을 제·개정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엔지니어링 분야처럼 이와 연계된 ‘온라인 대가산정서비스’ 역시 마련하여 발주처가 사업발주를 위한 예정가격을 결정하는데 활용토록 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적정 건축설계대가 지급 구조를 자리 잡게 하는 길잡이로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설계단계에서의 설계변경에 대한 정의뿐 아니라 관련 절차가 없다 보니 발주처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무리한 설계변경을 요구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공사비 증가, 설계기간 연장 등 설계비 증액요인이 발생했을 때 설계변경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건축설계업계가 타 산업과 비교해 투입되는 시간·인력 부담 대비 생산성·채산성이 낮은 이유다. 이에 협회는 건축단체·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설계변경 정의 도입을 비롯해 현행 시공단계에 한해 설계변경이 인정되는 것을 ‘설계단계별’, ‘시공단계 이전’에서도 인정되게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또 추가업무에 대한 비용 산정은 ‘업무대가 산출내역서’를 도입, 이를 사용토록 개선한다.
또 설계자가 건축물의 건축과정에 지속 참여하여 설계 취지 및 시공·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하는 ‘설계의도 구현’ 대가 산정기준 개정도 추진한다. 현행법상 공공건축물과 허가권자 지정 감리 때 설계의도 구현이 의무화돼 있지만, 대가 산정을 위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업무에 대한 일관된 예산안 산정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계약 때 발주처와 분쟁 소지가 다분한 현실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설계자가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 공사기간 중 참여했음에도, 실질적인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하지 못하고 무상으로 업무를 수행하거나 수의계약 범위 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으로 계약, 비용을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공짜 업무’를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협회는 설계의도 구현 업무대가 산정방식을 ‘설계비 요율방식’으로 개선한다.
협회 법제정책처 관계자는 “낮은 대가를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가 미래 인재 유입을 막는 동시에 건축사를 비롯한 건축사보 등 업계종사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아 산업성장판마저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낮은 대가 지급에 익숙한 발주기관의 불공정 관행과 이에 수반한 계약제도 및 대가기준을 개선·재정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건축설계산업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준을 만들 것이며, 이를 통해 업계가 채산성이 낮은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을 갖춰 인력 육성이 선순환되는 구조로 체질개선을 해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