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색을 입히다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공간에는 어김없이 바다와 호수, 숲, 하늘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건축물이 있다. 자연의 형태와 부합하는 재료와 색채를 가진 장소들은 고유한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한 흑백 영화 자산어보 또한 그러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곳곳을 배경으로 흑백의 잔잔함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녹여낸 시대의 기억이 주는 색상을 영상미로 잘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을 담은 가슴 울림, 어류생태서 자산어보를 만들어 가는 과정들 그리고 흑백 화면이 주는 감동 등은 건축 삶의 깊이를 다잡아 보게 하는 더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우리는 길을 걷다, 혹은 여행 중에 색상을 통한 시각효과의 제공으로 강렬한 기억을 갖게 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 공간을 디자인해 현장에 담아내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고 필자는 여긴다.
무궁무진한 마감재료의 다양성, 그 재료마다의 특성과 색상의 차이를 MIX & MATCH 할 수 있는 역량과 감각을 키우는 안목이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에서 재료의 색상, 역할과 사용은 얼마나 큰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가 하는 건축 작업에서 재료와 색상이 중심이 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소가 주는 기억들은 자연과 그 배경에 자리한 건축물의 조화를 시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즉각적인 감정과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건축물에 입혀진 재료와 색상은 이미지 부여를 위한 구성 요소를 더욱 명확하게 한다. 더불어 공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재료와 함께 선택되고 적용 되어지는 색상은 공간의 내부, 외부의 건축 읽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론 건축물에 입혀지는 색상은 폐쇄되고 열악한 공간을 변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생기를 되찾아 주기도 하며, 용도에 알맞게 적절히 사용 되어지는 색상은 감성을 자극하며 치유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 고유 정체성의 본질을 차별화하는 요소가 되어준다.
건축물은 소리, 빛, 온도, 재료와 색상과 어우러져 우리가 사는 장소의 이미지를 때론 차분한 분위기의 낮은 주파수로 구성되게 하고, 풍성한 음율이 있는 감각적 장소와 풍경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르누보 선두주자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다채로운 재료와 색상(타일과 색유리 파편, 벽돌 등)으로 장식되어진 건축물들, 감성적 디자인의 명인이며 누구보다도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던 멕시코 건축사 루이 바라간(Luis Barragan)의 절대적인 대비를 이루는 색상 사용은 오늘날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에 적용되는 마감재와 색상 선택권에 대해 무한한 창의성과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팬톤에서 발표한 2022년을 대표하는 컬러는 베리베리(Very Peri)이다. 블루컬러의 특성과 동시에 보라색과 빨간색이 오묘하게 조합된 느낌의 베리베리 컬러의 특징은 자신감과 역동적인 자유로운 존재감을 유니크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느낌이다. 베리베리 컬러가 건축물과 어우러진다면? 몽환적인 오묘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리라 필자는 여긴다.
점점 다양하고 스마트해지는 시대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우리 건축사들 역시 공간에 ‘감정을 더하는’ 색상을 좀 더 깊게 알아보는 일, 색채에 대한 관심도를 제고해, 다양한 용도의 프로젝트에서 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데 필요한 감성적 색상을 더한 건축으로 보다 좋은 성과를 이루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