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건축은 없다

2022-06-21     박주연 건축사 · TEA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박주연 건축사

당장 내일의 주식, 비트코인 가격도 예상하기 어려운 세상에 명확하게 결정된 미래가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초고령사회의 임박이다. 지난 한 해 인구 자연감소 규모는 5만 7,000명, 출산율은 0.81명이었으며 올해 예상치는 0.7명 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구는 매해 수십만 명씩 줄어들어 내가 노인이 될 2060년에는 거리를 다니는 2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래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노인과 같은 현자(賢者)도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나라는 존재하지 않음을 다룬다. 이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또한 대응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으나 멀리서 오고 있는 이 쓰나미를 대부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

산업 특성상 도시와 건축의 변화는 어느 분야보다 더디다. 산적한 현안에 매몰되어 그렇다기엔 ‘미래의 도시와 건축’ 관련 세미나는 어느 업종보다 자주 열리지만 이 중 초고령사회를 다루는 곳은 거의 없다. 아직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갈 곳이 많지 않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경로당, 지하철 내 노약자 배려석, 할아버지들의 성지인 탑골공원이 대표적 노인들의 점유공간이다. 우리는 배려한다는 명분 하에 오히려 그들을 한정된 공간에 가두고 있다. ‘노인용’ 공간을 따로 뗀 이분법적 접근은 끝까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의 임박을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호의존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혼인율을 고려했을 때 그들은 독거노인이 되어 고립될 확률이 높다. 동네마다 늘어나고 있는 학교의 빈 교실, 유휴청사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재수립해야 한다. 이는 주체적 노후를 위한 삶의 거점이 될 것이다.

또한, 노인들의 신체 기능 저하를 배려해 도시는 더 느리고 낮아져야 한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 시간은 더 확보되야 하고, 노후 공공청사를 중심으로 실행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도 정부 지원을 통해 민간 건물에까지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노인들이 찾지 않는 건물은 사장될 위기에 놓여 도시의 미관을 해치거나 임대료가 유일한 수입원인 노인들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

더불어 실내공간 중심의 공공건축도 달라져야 한다. 연구의 의하면 저소득층 노인활동의 대부분은 TV 시청 등 실내에서 이뤄지는 정적 활동이다. 신체활동량의 감소는 저조한 심폐적성을 낳는다고 한다. 탑골공원이 노인들이 성지가 된 것은 단순히 커뮤니티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등 옥외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신체활동 증가, 자연요소 감상 등의 치유적 혜택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의식개선이 요구된다. 사실 노인을 위한 공간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더 느리고 낮아진 도시와 건축은 아이 어른할 것 없이 모두가 편안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노인용 디자인’을 분리하여 접근하지 않는 통합적 계획이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논의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설계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냉철한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