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優先順位)
지난 10월 13일부터 11월 4일까지 대한건축사협회가 전국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축설계·감리 분리 관련 설문조사의 결과가 공개됐다.
전국 정회원 8,073명 중 35.95%인 2,902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조사결과, 건축설계·감리 분리에 대한 찬성의견이 83.71%, 반대 의견이 15.83%로 건축설계·감리 분리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월 설계·감리 분리 찬반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대략 분리 찬성 51%, 분리 반대 49%의 결과로 찬성과 반대 의견이 거의 반반이었다.
물론 설문조사 내용과 방식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불과 2년 사이에 나타난 건축사 회원들의 이 같은 사고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론적인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점진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현상황에서는 실속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즉 건축설계시장의 붕괴 속에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봉착,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정책의 수립보다는 ‘생계’유지를 위한 정책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금번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대한건축사협회소속 16개 시·도회장들은 대한건축사협회장에게 건축설계·감리분리의 법제화 추진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협회장은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을 1순위, ‘건축설계·감리 분리’를 2순위로 협회차원에서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興一괿겘겭除一害 生一事겘겭滅一事”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나의 해로움을 제거함만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하나 벌이는 것은 하고 있는 수고를 하나 더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원나라의 명재상 야율초재의 말로 칭기즈칸이 죽고 제위를 물려받은 오고타이의 “아버지가 건설한 제국을 계승 발전시키려면 어찌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오고타이는 뭔가 아버지를 뛰어넘는 새 업적을 더해야 한다는 조언을 기대했겠지만 야율초재는 더하기보다 빼기를 먼저 생각하라고 지적한 것이다.
스티브잡스도 그랬다. 두께나 성능 같은 하드웨어 스펙 경쟁을 하는 휴대전화업계에 이용자가 원하는 기능만 편히 쓸수 있도록 버튼 하나만 남겨두고 다 없앤 아이폰으로 새 시대를 열었다.
건축사회원들을 위해 무엇이 우선인지 대한건축사협회 집행부 스스로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