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022-05-18     함성호 시인

음악

- 진은영

 

손바닥 위에 빗물이 죽은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써주는 것 같다
너는 부드러운 하느님
전원을 끄면
부드럽게 흘러가던 환멸이
돼지기름처럼 하얗게 응고된다

―진은영 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2012년

 

이것은 음악에 대한 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제목이 그러니까. 이것은 음악에 대한 시가 아닐지 모른다. 하느님에 대한 시일 수도 있으니까. “부드럽게 흘러가던 환멸”은 전원을 끈 다음일까? 아니면 전원을 끄기 전의 상태일까? 손바닥 위에 적히는 죽은 이들의 이름은 분명 시각보다 청각에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너는 빗물일까? 이름일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하는 행복한 생각의 번짐 속에서 분명한 것은 “돼지기름처럼 하얗게 응고된다”는 진술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