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그냥 삶이다
코로나19라는 인류 역사의 커다란 이슈를 함께하는 와중에, 비극적이게도 러시아-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화면으로 만나고 있다. 그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과 물가가 상승하는 등 정말 힘들고 정신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아쉬움은 어느 한명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직접적인 고충은 공사비의 상승으로 인해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공사물량 감소와 인구절벽에서 오는 극심한 인력난이다. 물론 일이 많아 넉넉한 것도 아니다.
사회적인 인재(人災)가 발생하면 하나 둘씩 새로운 법이 신설되고, 기존의 법도 강화되면서 새롭게 적용하고 점검해야 할 규정 또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시간은 흘러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고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자연스럽게 주변을 보게 된다. 가족과 지인들의 만남이 많아지고, 다행히 코로나19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게 되어 반가운 마음은 배가 되는 것 같다. 그 반가움과 정은 힘들던 일상을 벗어놓기에 충분한 이유와 에너지가 된다.
한없이 밝게 웃으면서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아이와 모처럼의 식당모임을 통해 배부르게 맛있는 밥을 드시면서 안부를 묻는 부모님, 코로나19로 인하여 마음 편히 뵙기 힘들던 스승님과의 만남을 위해 식당을 예약하고, 누구보다도 늘 함께 있어 힘이 되어주는 반쪽을 위해 간단한 레시피를 찾는 요즘의 일상은 정말 행복함 그 자체이다.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행복이 있어 사회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힘겨움, 정치적 이슈들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책상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 타서 자리에 앉아 롤지를 깔아 본다. 연필과 스케일을 들고 투명한 롤지 밑의 지적도를 보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
건축주와의 대화를 하나하나 회상하고 현장에 지어질 건물을 상상하며 밤새워 스케치하던 그때의 ‘첫마음’으로 돌아가 본다.
대단한 건축물은 아니겠지만 건축주와 시공사, 우리의 꿈과 희망의 시작은 이 롤지에서 시작되기에 다시 한 번 선을 만들고, 지우고, 만들고, 지우고….
잘 하지는 못하지만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이다. 자랑할 일도 아니고 멋을 부릴 일도 아니다. 밖은 혼란스럽고 북적이며 아웅다웅하는 속에서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와도 나는 그냥 건축을 할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서 그럴 것이다.
선 하나에 조심하며 고민 고민 끝에 마음의 디자인을 하나 둘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담겨있는 건축물이 롤지 위에 만들어지고, 건축주와 시공사와의 꿈과 희망도 풍성해 질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전짐삼 선생님의 ‘건축의 불꽃’이라는 책에는 ‘건축하다 죽어라’라는 단락이 있다. 끝없는 깊이와 내용으로 가득한 건축에서는 그 안에서 온전하게 서 있는 것도 힘든 것이다.
나에게 있어 건축은 그냥 삶이다.
아무리 힘겨운 시간이라도 가족과 지인의 평범하지만 정겨운 삶은 건축을 더욱 재미있고 신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언제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