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 그리고 건축사

2022-04-19     김지아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GA <경상북도건축사회>
김지아 건축사

건축이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내 아버지의 일이지만 말이다. 사무소에 놀러갈 때마다 아버지는 동료들과 함께 밤늦은 시간까지 뿌연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선을 긋고 지우는 일을 반복하고 계셨다. 커다란 기계는 계속 A1 사이즈의 파란 종이를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 도구는 종이에서 컴퓨터로 바뀌었지만 집중해서 무언가를 그리는 그분들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건축사’. 다른 분들이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기에 친숙한 단어가 되긴 했지만 어린 나는 아버지가 뭐를 하는 분인지 잘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난 대학전공으로 건축을 선택했고 건축기사시험 준비도 했으며 대학원에 진학에 무작정 실무경력을 쌓기까지 했다. 부모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안타깝게도 기쁘지는 않았다. 

설계 모형을 만드는 순간도, 작품전 준비를 위해 밤새가면서 끙끙거리는 날도 그 때는 내가 좋아서 그러는지도 몰랐다. 자격증만 따면 뒤도 안돌아보고 건축을 떠날 것이라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봄, 나는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 건축을 싫어했던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도 모두 건축사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지금의 나에게서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을 가끔 느낀다. 보다 좋은 집을 짓겠다고 모니터와 씨름한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건축사인 아버지의 딸이라는 게 내 이름을 걸고 독자 사업을 하는 데 벽으로 다가온 게 사실이다. 지나고나니 할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솔직한 모습으로 노력해 내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들고 좋은 건축물을 지으려 매일매일 노력하다보니 지금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한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언쟁이 생길 때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부녀지간보단 서로의 사업동반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경험에서 오는 여유와 건축주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 현장감리 등은 아버지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아버지 세대 건축사들은 평생 직업 ‘건축’을 위해 얼마나 많이 부딪치고 깨닫고 이끌어왔을까?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열정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앞 세대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물론 바뀌어야 할 점도 많다. 물론 그 변화는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버지를 통해 배워가듯 아버지도 나를 통해 바뀌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현장에서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릴 적 내가 일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바라보듯, 지금은 아버지께서 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신다. 대견하게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시선이 너무나도 힘이 되는 지금이다.